'고액 연봉자는 더 일하게'…한은 연구진 '한국형 이그젬션' 제안
SBS Biz 신다미
입력2026.10.06 18:00
수정2026.10.06 18:32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 기념사진 (사진=연합뉴스)]
고소득 근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장은 오늘(6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가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개최한 '인구·AI 대전환 시대, 얼마나 어떻게 일할 것인가' 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에는 오 팀장을 비롯해 이창용 서울대 특임교수(전 한국은행 총재), 윤진영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 과장, 한진수 한국은행 조사국 조사총괄팀 조사역이 함께했습니다.
이창용 교수도 이날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날 포럼 토론에서 국내 노동제도가 과거 제조업 성장기에 형성된 '블루칼라 중심'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화이트칼라에 맞는 별도의 노동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살기 위해서는 화이트칼라가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며 "1억5천만원씩 받는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그게 나라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화이트칼라가 열심히 뛰게 하고 본인들이 본인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유연성을 줘야 한다"며 "화이트칼라를 블루칼라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서는 나라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어떻게 보전될 것이냐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줄이자고 하면 가운데 있는 노동자만 생각하는 것이 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고령화와 AI(인공지능) 확산으로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하루 8시간·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추가 단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진은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이후 초과근로 시간과 초과급여가 각각 7.7%, 6.7%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소득 1분위 근로자의 초과근로 시간과 초과급여가 각각 15.5%, 15.9% 줄어드는 등 소득 감소 충격이 저소득층에 집중됐습니다.
반면 고소득층에서는 총급여 감소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1인당 생산성을 유의미하게 높인 효과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1인당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가 더 부정적으로 나타나 성과 중심 업무와 획일적인 근로 시간 규제가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연구개발(R&D)·정보기술(IT)·금융 등 성과 평가가 가능하고 업무 자율성이 높은 직무에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보수를 받는 관리·전문직 등에 대해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 등을 면제하는 제도입니다.
이창용 교수는 현행 재량근로제 등으로는 충분한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일부 해외 금융기관이 국내 인력을 축소하고 관련 업무를 해외로 이전한 사례를 들며 노사 합의 이후에도 장시간 근로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이 교수는 "그런 법적인 위험을 두고 한국에서 고급·고액 근로자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잠재적 적용 대상은 관리직·전문직·사무직 가운데 연간 총급여가 상용근로자 중위임금의 200%인 약 8천200만원 이상인 근로자로, 약 149만명(전체 상용근로자의 10.8%)으로 추산됐습니다.
다만 이는 업무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잠재적 규모입니다.
오삼일 팀장은 간호사처럼 교대근무 등으로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기 어려운 직무는 제외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실제 업무시간과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성과 측정이 가능한 직무만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가산 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대신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할 안전장치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오 팀장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산업에 한정하기보다는 직무나 소득, 업무 자율성에 기반해 좀 더 폭넓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법정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대신 휴가 사용을 활성화해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국내 근로자의 유급휴가 소진율을 현재 75%에서 95%로 높이면 연간 근로 시간을 약 31시간, 근무일 기준 약 4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오 팀장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일률적인 추가 단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쉴 때 쉬는 문화를 통해 실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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