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회사들의 순한 전쟁…소주 15도 시대 개막
소주가 갈수록 순해지고 있습니다. 한때 30도를 훌쩍 넘었던 소주가 이제는 15도대까지 내려오면서 주류업계의 저도주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1일 대표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춘다고 밝혔습니다. 출시 20주년을 맞아 브랜드의 핵심 속성인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변화한 음주 문화를 반영한 조치입니다. 도수 조정에 따른 맛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감미료 함량도 함께 조정합니다.
‘처음처럼’은 지난해에도 알코올 도수를 16.5도에서 16도로 낮췄습니다. 2006년 출시 당시 20도였던 제품이 20년 만에 4.3도 낮아진 것입니다. 롯데칠성음료의 ‘새로’ 역시 지난해 16도에서 15.7도로 도수를 낮췄습니다.
오비맥주도 소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최근 15도 수준의 ‘찰랑’을 출시하며 소주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맥주 시장에서 확보한 유통망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소주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하이트진로 역시 저도주 제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진로’와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각각 16도에서 15.7도로 낮췄고, 지난 7월에는 11.7도짜리 ‘진로 라이트’를 선보이며 저도주 제품군을 넓혔습니다.
소주의 저도화는 최근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
1924년 출시된 국내 첫 소주 ‘진로’의 도수는 35도였습니다. 30도 아래로 내려온 것도 1973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이후 2006년 ‘참이슬 후레쉬’가 19.8도, 무학 ‘좋은데이’가 16.9도로 출시되면서 이른바 ‘20도의 벽’이 무너졌고 순한 소주 경쟁이 본격화했습니다.
음주 문화가 달라진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힙니다.
과거 소주는 일을 마친 뒤 동료들과 빠르게 취하기 위해 마시는 쓰고 독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서민 술’이라는 문화적 의미도 컸습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주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소주 역시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술에서 천천히 마시며 자리를 즐기는 술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제조 기술의 발전도 저도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한때 16도 안팎을 소주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사실상 하한선으로 여겼습니다. 도수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소주 특유의 쓴맛을 유지하기 어렵고 물 비린내가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에 쌀이나 증류 원액을 섞거나 감미료를 조정하는 방식 등이 활용되면서 낮은 도수에서도 맛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저도화에는 비용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소주는 주정에 물과 감미료 등을 섞어 제조하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주정 사용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소주 도수를 0.1도 낮출 때마다 1병당 주정값이 약 0.6원 절감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저도수 소주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취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한 자리에서 마시는 양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도주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줄어드는 소주 소비입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2022년 86만2천㎘에서 2023년 84만4천㎘, 2024년 81만6천㎘, 지난해 79만3천㎘로 4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시장 자체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주류업체들이 소비자의 변화한 취향에 맞춰 ‘더 순한 소주’를 내놓으며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소주의 경쟁 기준도 ‘얼마나 독한가’에서 ‘얼마나 부드럽게 마실 수 있는가’로 바뀌고 있습니다.
1924년 35도에서 시작한 소주가 100여 년 만에 15도대까지 내려오면서, 소주 시장의 ‘순한 술’ 경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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