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이 손잡은 '핸즈온' 과학관…2032년 GBC에 들어선다
SBS Biz 조슬기
입력2026.08.23 09:57
수정2026.08.24 11:16
[익스플로라토리움 과학관 외부 전경 (The Exploratorium)]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엠바카데로 15·17번 부두. 관광객으로 붐비는 부두를 따라 걷다 보면, 탄소 분자 구조를 형상화한 대형 흰색 격자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옆으로 'explOratorium' 로고가 걸린 짙은 회색 건물이 서 있는데, 이곳이 체험형 과학관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입니다. 언뜻 평범한 과학관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전 세계 과학관과 교육 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자 과학 교육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체험형 과학관 건립을 위해 지난 4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상대이기도 합니다.
현지시간 지난 19일, 앤 리처드슨(Anne Richardson) 익스플로라토리움 최고경험책임자(Chief Experience Officer)는 "우리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인간의 지각(perception)을 통합한다"며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사물을 바라보되, 인간이 그 방정식의 일부라는 걸 항상 기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보다(Seeing)'라는 이름의 전시관이 있는데, 보는 행위 즉 지각이 과학의 일부라는 이 과학관의 철학이 이름에서부터 드러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핸즈온(Hands-on)' 과학관…물빛·열·도시 모두가 교재
[사진 설명 (시계방향) 1) 엔젤 아일랜드 지도·자료 아카이브 전시 2) 회전식 관측 망원경 (창밖 코이트 타워 조망) 3) '샌프란시스코의 묻힌 역사' 터치스크린 전시 4) 전시홀 중앙의 대형 달 모형 5) '어반 히트 카메라' 열화상 전시 (샌프란시스코만 조망) 6) 전시홀 중앙에 매달린 대형 달 모형 앞으로 체험형 전시물과 관람객들이 늘어선 모습]
익스플로라토리움은 1969년 물리학자 프랭크 오펜하이머가 세웠습니다. 원자폭탄 개발을 이끈 핵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동생입니다. 형과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는 이후 고등학교 물리 교사가 됐고, "과학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는 것"이라는 믿음을 이 과학관의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콜로라도에서 가르치던 물리 수업 교구를 옛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로 옮겨와 전시물로 만들던 중, 누군가 문을 열어놓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럼 그냥 열자"는 말과 함께 지금의 익스플로라토리움이 탄생했다는 게 리처드슨 CXO의 설명입니다. 리처드슨 CXO는 오펜하이머의 설립 철학과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다.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길 포기하면 사회적·정치적 세계에 대해서도 포기하게 된다"며 "우리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우리 모두 침몰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듣다가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익스플로라토리움 전시 안내자가 과학자도 은퇴한 교사도 아닌 고등학생들을 '익스플레이너(Explainer)'로 고용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슨 CXO는 "오펜하이머는 처음부터 학교 성적과 무관하게 이곳에서는 과학을 배울 수 있고, 이곳에서 배운 걸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며 "'이 학생들도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익스플로라토리움 설립 철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설립 철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전 세계 과학관의 80% 이상이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체험형 전시 방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찾는 이곳에는 과학은 물론 예술, 기후 변화까지 아우르는 650여 종의 전시물이 갖춰져 있습니다. 모두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설립 철학을 토대로 자체 개발·제작한 것들입니다.
실제 유리창 너머로 코이트 타워가 보이는 관람 공간에는 회전식 망원경과 원형 거울 반사판 같은 체험 기구가 놓여 있었는데, 도시 스카이라인을 관찰 도구로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도시 열섬 현상을 보여주는 열화상 카메라 전시물 앞에서는 포장도로와 녹지가 밤에도 서로 다른 열을 내뿜는 모습을 관람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핸즈온 전시물들이 배치됐습니다. '물빛으로 보는 과학(The Color of Water)'이라는 전시물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두 난간에 설치된 이 패널은 바로 아래로 흐르는 샌프란시스코만의 실제 수면과 나란히 배치돼 있는데, 관람객이 눈앞의 물빛을 직접 관찰한 뒤 패널의 색상 다이얼을 돌려 비슷한 색을 찾으면 그 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물이 초록빛을 띠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많다는 뜻이고, 갈색을 띠면 흙이나 모래 같은 퇴적물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실험실의 인공 재료가 아닌 눈앞에 흐르는 실제 바닷물을 교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익스플로라토리움다운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조수 데이터로 만든 리본…심장박동으로 움직이는 세포
[사진 설명 (시계방향) 1) '조수 리본(Tidal Ribbon)' 설명 패널과 조수 데이터 시각화 조형물 2) 켄 핀 에듀케이터가 샌프란시스코만 조류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모습 3) 실시간 선박 항로를 색상별로 보여주는 'Ship Tracker' 전시물 4) 살아있는 심근세포를 보여주는 'Live Human Heart Cells' 전시 5) 'Braided Stream' 모래 위 물줄기 패턴 전시물]
본격적인 전시관 안내는 켄 핀(Ken Finn) 익스플로라토리움 에듀케이터(People & Culture)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안경을 쓴 백발의 그는 발밑의 샌프란시스코만을 가리키며 "지금 밀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들이 항상 조류가 흐르는 방향을 가리키며 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조수 리본(Tidal Ribbon)'을 보여줬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설치된 조수(潮水) 데이터 시각화 전시물입니다. 흰색 플라스틱 조각들이 물결 모양으로 매달려 있는 게 실제 조수 그래프를 물리적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골든게이트 인근 프리시디오 조수관측소가 서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소(1854년 설립)라는 것을 설명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켄 핀은 "샌프란시스코는 1848년 골드러시 시절부터 조수 데이터를 기록해왔는데, 이 방대한 데이터를 레이저 커터에 입력해 하루하루의 조수 그래프를 플라스틱 리본 조각 하나하나로 물리적으로 잘라냈다"며 "리본마다 그날의 달 모양도 함께 새겨 넣어, 달의 위상과 조수의 상관관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호주 서퍼들 사이에서 쓰이는 '킹 타이드(King Tide·사리)'라는 용어를 소개하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인근에는 실시간으로 만(灣) 위 선박의 항로를 색상별로 추적하는 'Ship Tracker' 전시물도 있어, 매일 오클랜드·리치몬드 항으로 드나드는 화물선과 유조선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생물학 전시관에서는 살아있는 심근세포(cardiomyocyte)를 현미경과 카메라로 보여주는 전시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켄 핀은 직접 전극을 몸에 연결해 자신의 심장박동 신호를 잡아냈고, 화면 속 세포가 그 박동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심장 전기 신호가 몸 전체에 펄스를 보낼 때마다, 이 화면이 그걸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익스플로라토리움에 상근 생물학자만 7명이 있어 전시물 속 살아있는 생물들을 계속 관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익스플로라토리움 주목한 현대차그룹…2032년 GBC 청사진
[익스플로라토리움이 자리한 피어 15/17 입구의 표지판]
현대차그룹과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인연은 지난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습니다. 양측은 국내 체험형 과학관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체결식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재훈 부회장, 윌리엄 F. 멜린 익스플로라토리움 이사회 의장, 린지 비어만 관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리처드슨 CXO에 따르면, 익스플로라토리움은 자체 개발한 체험형 전시 노하우를 브라질(브라질리아), 미국 캔자스시티(2023년 개관), 쿠웨이트 과학센터(2025년 개관), 칠레 라 세레나 거대마젤란망원경(GMT) 관람자 센터, 싱가포르 과학센터 등 전세계 각지의 과학관 프로젝트에 이식해왔습니다. 이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현대차그룹과 함께하는 서울 과학관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우리 철학을 기반으로 하되, 아시아 전역의 대중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 프로젝트는 서울과 한국, 나아가 아시아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호기심(Curiosity), 창의성(Creativity), 커뮤니티(Community), 협업(Collaboration) 등 네 가지 핵심 가치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오는 2032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이 과학관은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를 대표하는 전시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입니다. 지역 주민과 국내외 방문객은 물론 미래 성장세대에게 새로운 과학 체험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모빌리티, 로봇, 인공지능(AI) 등 과학교육 혁신을 통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계획대로 조성된다면 이 과학관은 단순히 보고 듣는 '지켜보는(Hands-off)' 소극적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방문객이 스스로 탐색하고 실험하는 참여형 전시 공간으로 조성됩니다. 나아가 과학자, 교육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전시 기획과 연구에 참여하고 학교와 지역 사회를 잇는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해 '과학 커뮤니티 플랫폼'으로서 역할도 맡을 예정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관련해 본격적인 과학관 조성에 앞서 실제 관람객의 경험과 목소리를 먼저 수렴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10월부터 11월까지 서울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팝업 전시 '해브 펀 위드 사이언스(Have Fun with Science)'를 개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해당 전시는 관람객이 기초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형 전시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전시 기간 중에는 다양한 이벤트와 성인 대상 특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650여 개의 전시물과 7명의 상근 생물학자, 자체 제작 공방까지 갖춘 미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라토리움 과학관의 노하우가 2032년 서울 GBC에 어떤 모습으로 이식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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