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간 '다산다사', 시총 200억 밑이면 부실기업? [시장 엿보기]
SBS Biz 신현상
입력2026.08.21 08:25
수정2026.08.21 08:36
좋은 기업은 쉽게 상장시키고, 부실기업은 신속하게 퇴출하겠다는 이른바 코스닥의 '다산다사(多産多死)' 정책이 결국 법정에 섰습니다.
오늘(2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상장폐지 기준을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 적용한 것을 둘러싼 첫 심문이 열립니다.
코스피 상장사 2곳과 코스닥 상장사 1곳 등 3개사가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결국 '시가총액 200억원'입니다.
지난달부터 코스닥 상장유지 시가총액 기준이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내년 1월에는 다시 300억원으로 높아집니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뒤에는 90거래일 가운데 연속 45거래일 동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시가총액이 2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업을 부실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에는 새 기준이 처음 적용되며 코스피·코스닥 36개 종목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습니다.
동전주와 시가총액 미달 등이 겹친 결과로, 시가총액 미달만 놓고 보면 코스피 5개, 코스닥 4개였습니다.
이제 '다산다사'는 실제 기업의 생존과 투자자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문제가 됐습니다.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동안 코스닥은 상장 속도에 비해 부실기업 퇴출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부실기업이 오래 남아 있으면 투자자 신뢰가 떨어지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까지 저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업의 진입은 원활하게 하고, 부실기업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퇴출하겠다는 것이 '다산다사'의 취지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를 위해 시가총액과 동전주, 완전자본잠식, 공시위반 등의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크게 이견이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퇴출하느냐'가 아니라 '퇴출해야 할 기업을 얼마나 정확하게 가려내느냐'입니다.
특히 이번 개편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시가총액입니다.
시가총액은 매출도, 영업이익도, 현금흐름도 아닌,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와 발행주식 수로 결정되는 숫자입니다.
물론 시가총액이 낮다는 것은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낮다는 뜻이고, 상장기업의 존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상장폐지를 피하거나, 시장에서 기능을 잃은 기업이 계속 상장을 유지하는 걸 막으려면 객관적인 숫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숫자 하나가 기업의 실질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기업의 영업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시장 전체가 급락하면서 주가가 떨어진 경우와, 사업 기반 자체가 무너져 주가가 폭락한 경우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코스닥 시장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기준에 미달한 기업은 192곳(전체의 7.4%)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물론 이 기업들의 상장폐지가 곧바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고, 관리종목 지정 이후 기준을 회복할 기회도 있습니다.
다만 회복 여부와 별개로, 시가총액 하락이 기업의 실질적인 부실 때문인지 시장 상황 때문인지를 시총 기준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기준을 서둘러 강화한 이유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초 금융당국은 시가총액 기준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습니다.
코스닥은 2026년 150억원, 2027년 200억원, 2028년 300억원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금융당국이 개혁방안을 내놓으며 이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코스닥 기준으로 올해 7월 200억원, 내년 1월 300억원입니다.
금융당국이 표현한 대로라면 '조기화'입니다.
정책은 필요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부실기업이 많이 누적됐다고 판단했다면 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속도를 높였다면 그만큼 설명도 필요합니다.
왜 당초 계획보다 서둘러야 했는지, 조기 시행으로 어떤 기업이 영향을 받는지, 정상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는지 시장에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열리는 법원의 첫 심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가처분 신청에서 핵심 쟁점은 단순히 '시가총액 200억원이 적정하냐'만은 아닙니다.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겨진 상장폐지 기준을 기업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는지, 조기 시행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이 법원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신청 기업들은 개정된 상장폐지 기준의 조기 적용이 부당하다며 관리종목 지정을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번 법정 공방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부실기업을 퇴출하는 것과 정상기업을 보호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목표가 아닙니다.
좋은 상장폐지 제도라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합니다.
퇴출해야 할 기업은 신속하게 내보내되, 단순히 주가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까지 같은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코스닥에 필요한 것은 '많이 낳고 많이 죽이는 시장'이 아닙니다.
좋은 기업은 더 쉽게 들어오게 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충분히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결국 많이 죽이는 것보다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 그것이 코스닥의 신뢰와 경쟁력을 높이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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