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회전…장기금리가 다음 시험대
SBS Biz 임선우
입력2026.08.03 04:41
수정2026.08.03 05:43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던 기술주가 급락한 뒤 빠르게 반등했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2020년 이후 가장 큰 투자전략의 회전이 나타났습니다. 최근 상승한 종목을 추종하는 모멘텀 전략이 무너진 반면 가치주와 우량주, 변동성이 낮은 종목이 급등하면서 AI 중심으로 형성된 월가의 투자 질서가 흔들렸습니다.
블럼버그통신은 현지시간 1일 월가가 지난달 31일 기술주 반등으로 한 주를 마쳤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2020년 이후 가장 큰 투자 스타일의 회전이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레버리지를 활용해 AI 관련주에 집중 투자한 헤지펀드의 강제매도가 변동성을 키웠지만 근본적인 불안은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문과 미국 장기국채 금리 상승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가 과도하게 몰린 거래에서 레버리지가 해소된 일시적 충격인지 AI 투자 확대를 떠받쳐온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신호인지가 시장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시장 급변의 중심에는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운용하는 AI 전문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있었습니다.
이 펀드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AI 관련주 투자에서 손실을 내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에 직면했고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락장에서 보유 상장주식을 대거 매도해야 했습니다.
켄 그리핀이 이끄는 시타델이 이 펀드에 남아 있던 상장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한꺼번에 인수하면서 대규모 매도 압력은 일단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시장 급락의 최초 원인은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AI 관련주는 이 펀드가 매도에 나서기 전부터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이 AI 기반시설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강제매도는 이미 진행 중이던 하락을 가속했고 시타델의 인수는 반대로 매도 압력을 제거해 급반등을 촉진했습니다.
한 헤지펀드의 거래가 시장 방향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혼잡한 포지션과 레버리지가 기존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증폭한 셈입니다.
이번 시장 변화는 주가지수보다 계량투자에 사용되는 요인별 흐름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요인은 주가의 상승 추세와 가치평가, 기업의 수익성, 변동성처럼 체계적 투자전략과 위험관리 모형을 구성하는 종목 특성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모멘텀 전략은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을 매수하고 부진한 종목을 피하는 방식입니다. AI 랠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관련 종목이 모멘텀 전략의 주요 수혜주였습니다.
그러나 모멘텀 전략은 최근 4거래일 동안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대가 촉발한 2020년의 대규모 순환매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어 31일에는 2020년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투자전략이 불과 며칠 사이에 2020년 이후 최대 급락과 최대 반등을 모두 겪은 것입니다.
반면 이전까지 시장에서 뒤처졌던 가치주와 재무건전성이 높은 우량주, 변동성이 낮은 종목은 급등했습니다.
와이 리 올스프링글로벌인베스트먼트 체계적 주식연구 책임자는 최근 모멘텀 약세가 시장 붕괴나 조정보다 투자전략의 회전에 가깝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시장이 이제 투자한 자본에서 더 나은 수익을 내고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에 보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가 상승세 자체보다 실제 수익성과 현금창출 능력을 따지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강제매도 압력이 사라진 뒤 AI 관련주는 빠르게 반등했습니다.
주가지수의 주간 변동만 보면 시장이 충격을 대부분 흡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포지션 변화는 시장 내부에서 훨씬 큰 충격이 발생했음을 나타냈습니다.
골드만삭스 프라임브로커리지에 따르면 28일까지 사흘 동안 헤지펀드가 주식 매수·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줄인 규모는 2022년 11월 이후 가장 컸습니다.
기업의 실적과 사업을 분석해 투자하는 롱쇼트펀드의 모멘텀 노출은 최근 5년 가운데 상위 89% 수준에서 후퇴했습니다. 계량모형을 이용하는 펀드의 모멘텀 노출은 상위 34%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시타델이 대규모 강제매도 물량을 인수한 뒤에는 그동안 낙폭이 컸던 종목으로 매수세가 빠르게 돌아왔습니다.
루이스 그랜트 페더레이티드헤르메스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강한 상승세 이후 급격한 반전이 나타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며 “상승장에서의 소외 공포가 높은 가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뀐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AI 수혜주의 주가가 크게 조정되면서 과도했던 가치평가 부담도 일부 낮아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의 강제매도가 끝났다고 해서 투자전략 회전까지 종료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JP모건 계량전략팀은 시장 심리가 나빠지고 통화량 증가세가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점을 들어 우량주 중심의 흐름을 제시했습니다.
JP모건은 최근 1년 동안 모멘텀 전략의 반전이 여러 차례 나타났지만 7월의 움직임은 이전과 달랐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장의 방향이 다시 AI 주도주로 완전히 돌아갈지 가치·우량주로 분산될지는 기업의 실적과 현금흐름에 달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AI 관련주가 이전처럼 시장을 주도하려면 막대한 투자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익 증가를 계속 입증해야 합니다.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투자자는 주가 상승 추세보다 현재의 이익과 자본수익률을 우선해 종목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번 회전은 AI 기술의 성장 가능성 자체보다 그 기대가 주가에 얼마나 반영됐는지에 대한 재평가로 볼 수 있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입니다.
블룸버그는 AI 관련주의 다음 시험대가 헤지펀드의 강제매도가 아니라 미국 장기국채 시장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이번 주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 그러나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이후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와 통화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장기국채 수익률이 오르고 수익률곡선도 가팔라졌습니다.
5년물과 30년물 국채 수익률 격차는 2025년 8월 이후 가장 큰 주간 확대 폭을 기록했습니다.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현상은 일반적으로 강한 경제성장 기대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번 장기금리 상승에는 물가상승 기대와 기간 프리미엄 확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기간 프리미엄은 단기채권을 반복해서 사는 대신 가격 변동 위험이 큰 장기채권을 보유하는 데 대해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보상을 뜻합니다.
장기금리 상승은 AI 투자에 두 가지 부담을 줍니다.
기업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통신망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을 빌리는 비용이 증가합니다. 동시에 할인율이 높아지면서 수년 뒤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의 현재가치도 낮아집니다.
AI 투자 주기는 기업이 현재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수익은 수년 뒤에 거두는 구조입니다. 차입 비용과 할인율이 함께 오르면 자본집약적인 데이터센터 사업은 양쪽에서 압박받게 됩니다.
울프리서치는 높은 국채 수익률이 자본비용을 높여 AI 투자 우려를 증폭하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할 성장 기대의 현재가치를 낮춘다고 분석했습니다.
장기금리가 다시 하락하고 AI 기업의 실적이 시장 기대를 충족한다면 이번 사태는 혼잡한 거래에서 과도한 레버리지가 제거된 일시적인 충격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라는 대규모 강제매도 주체가 사라진 직후 관련 종목이 빠르게 반등한 점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반면 높은 차입 비용이 지속되고 AI 기업의 투자수익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이번 회전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 투자 확대와 낮은 자본비용을 전제로 형성된 높은 가치평가와 집중된 포지션이 금리와 실적 변화에 예상보다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블룸버그는 이번 한 주가 AI 산업의 장기 전망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AI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치평가를 인정받던 시장 환경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질 가능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습니다.
AI 관련주가 다시 상승하더라도 시장의 보상 기준은 단순한 성장 기대에서 투자수익률과 잉여현금흐름, 자본조달 비용을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시장의 표면에서는 기술주가 반등했지만 그 아래에서는 AI에 집중된 포지션과 투자 논리가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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