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취재여담] 현대차 로봇은 사옥에, 미국 로봇은 일터에

SBS Biz 조슬기
입력2026.05.15 12:26
수정2026.05.15 16:48

현대차·기아, 양재사옥 관수 로봇 등 3종 로봇 서비스 개시 (영상: 현대차그룹 제공)


어제(14일) 오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새단장한 양재 사옥에서 세 종류의 로봇과 함께 기자들을 맞았습니다. 2년 간의 리노베이션 공사 끝에 새단장한 로비에는 화분에 물을 주는 '달이 가드너'와 음료를 나르는 '달이 딜리버리' 그리고 건물을 순찰하는 보스턴다이나믹스 로봇개 '스팟'이 배치돼 있었는데요. 정 회장은 로비 곳곳에 배치된 로봇들에 대한 생각을 기자들 앞에서 밝혔습니다. 그는 "다른 고객들에게 내놓기 전에 내부적으로 확실하게 검증해서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로비 등 회사 내 공간을) 앞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담담한 소감 이면에는 글로벌 로봇 전쟁터에서 한국 기업이 마주한 구조적 고립이 읽힙니다. 현대차 로봇이 화분에 물을 주는 동안, 지구 반대편 로봇은 이미 거친 산업 현장을 누비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미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관련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미국의 AI(인공지능) 로봇기업 '피규어 AI'의 CEO(최고경영자) 브렛 애드콕은 한국 시간으로 이날 새벽, 소셜미디어(SNS)에 링크 하나를 올렸는데요.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 03'이 Helix-02 AI 시스템으로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업무에 투입돼 자율 작동하는 장면을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공개했습니다. 패키지당 처리 속도는 평균 2.6초, 인간 작업자 수준을 상회하는 속도였습니다. 로봇 3대가 3~4시간마다 교대로 업무에 투입됐고, 나머지 2대의 로봇이 뒤에서 충전하는 순환 시스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대 근무를 로봇이 완벽히 대체하는 시나리오를 시연한 셈입니다. 당초 8시간이었던 라이브 스트리밍은 이튿날에도 이어졌는데요. 화면 하단 카운터에는 로봇이 처리한 패키지 수가 이날 오전 10시 전후로 3만7,000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 이벤트는 현대차그룹에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피규어 AI가 단순히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력을 과시하는 차원이 아닌 데이터를 쌓는 환경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박스 방향을 잘못 뒤집거나 주춤거리는 로봇의 실수조차 편집 없이 전 세계에 송출했습니다. 실수와 결함도 데이터로 여기며 학습을 이어갔고 회사는 SNS를 통해 일반인들은 물론 여러 잠재 고객들로부터 실시간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상용화가 임박했지만 기술 진보에 비해 규제 해소 속도는 더딘 실정입니다. 실증 한 번을 위해 기업이 넘어야 할 인허가 장벽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실외 이동로봇 안전 인증 항목이 기존 16개에서 8개로 줄었지만, 이러한 인증을 마친 로봇이라도 공원 하나를 지나려면 공원 관리 주체의 별도 허가가 필요하고, 부품 하나를 교체하면 인증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합니다. 로봇에 대한 기술력을 쌓는 속도보다 기술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속도가 더 느린 셈입니다. 정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자율주행과 로봇을 언급하며 유독 '안전'이라는 단어에 힘을 줬던 것도 규제 환경 안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고객이 쳐다보기도 싫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정 회장의 발언은 완벽주의를 넘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특유의 경직된 규제 환경을 의식한 방어 기제로 해석됩니다.

내부의 적이라 불리는 노사 갈등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입니다. 현대차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단체협약 제41조를 내세워 아틀라스 투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일자리 상실을 우려한 집단 반발은 로봇의 산업 현장 진입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됐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차 양재 사옥 리모델링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복합적입니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거친 현장에서 실시간 데이터를 흡수하는 동안, 현대차가 통제 가능한 사옥 안으로 들어간 것을 두고 업계에선 '현실적 대안'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리 로봇들이 담장 안에서 데이터를 쌓는 풍경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를 실감케 합니다.

ⓒ SBS Medianet & SBS I&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조슬기다른기사
세아제강지주, 1분기 영업익 59%↓…"판가 하락·중동 리스크"
르노코리아, 필랑트·콜레오스 구매 시 67% 잔가 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