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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에서 태어나 울산으로…HD현대, 왜 이 로봇을 찜했나 [취재여담]

SBS Biz 조슬기
입력2026.04.02 12:15
수정2026.04.02 15:43


페르소나AI 휴머노이드 로봇 컨셉 렌더링 (사진=Persona AI)


지난달 경기도 판교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서명식이 열렸습니다.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로보틱스, 그리고 미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페르소나AI(Persona AI)'가 조선소 용접용 휴머노이드 로봇 공동개발 협약(JDA)을 맺은 자리였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알았을 겁니다. 이 협약이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조선소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숙련 용접공들을 점차 로봇으로 채울 것임을 예고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양산 준비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국내 조선소 용접·도장 현장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방 근무, 3D 업종 기피, 고령화로 인한 퇴직, 신규 인력 유입 저조 등이 맞물려 핵심 공정을 담당할 숙련 기능 인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HD현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트너로 설립된 지 2년도 채 안 된 스타트업을 왜 선택한 걸까요? 

Figure AI, Agility Robotics 등 내로라하는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줄지어 있는 시장에서 HD현대는 신생기업 페르소나AI가 갖고 있던 조선업 DNA에 주목했습니다. 

NASA에서 심해로, 심해에서 다시 조선소로 
페르소나AI의 기술적 뿌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정밀 로봇 핸드 시스템입니다. 

우주복을 입은 채 협소하고 위험한 공간에서 정밀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이 기술인데, 조선소 선체 내부 환경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 용접사들이 작업하는 공간은 좁고 시야가 제한되며, 고온·분진·진동이 상시 존재하는 곳입니다. 우주선 내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창업자의 이력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페르소나AI의 최고경영자(CEO) 닉 래드포드(Nic Radford)는 NASA 존슨우주센터에서 14년간 일하며 국제우주정거장에 탑재된 인간형 로봇 '로보노트2'와 NASA 최초의 완전한 휴머노이드 '발키리(Valkyrie)'를 만든 인물입니다.

NASA를 나온 뒤에는 해양 자율로봇 스타트업 나우티쿠스 로보틱스(Nauticus Robotics)를 창업해 나스닥에 상장시켰습니다.

최고기술책임자(CTO) 제리 프랫(Jerry Pratt) 역시 Figure AI 출신 인사입니다. 우주, 심해, 그리고 조선소에 이르기까지 페르소나AI는 처음부터 범용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여타 회사들과 출발점이 달랐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소를 아는 사람들이 만든 로봇' 회사라는 점이 HD현대의 선택을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분석입니다.

기술력 증명 나선 창업 2년차 광폭 행보 눈길    
페르소나AI·미국선급(ABS) 조선소 휴머노이드 협력 이미지 (사진=Persona AI·ABS)


아울러 페르소나AI의 최근 행보를 보면 창업 2년차 스타트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개최된 '엔비디아 GTC 2026' 행사 당시 부스(#7021)를 차리고 관람객들을 상대로 그간 쌓아 온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력을 선보였습니다. 

곧바로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자리를 옮겨 음악·영화·인터랙티브(테크) 페스티벌인 'SXSW(South by Southwest)'에서는 행사 주요 세션 연사로 나서 로봇 기술력을 홍보했습니다. 

인재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와 글로벌 1위 드론 제조사 DJI를 거친 마이클 페리(Michael Patrick Perry)를 상업전략 총괄로, 아마존 로보틱스를 거쳐 델 테크놀로지에서 4년 만에 25배 생산 성장을 이끈 브라이언 데이비스(Brian Davis)를 글로벌 제조 총괄로 각각 영입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사람'과 '팔 사람'을 동시에 확보한 것으로 제조와 양산 준비에 본격 들어가겠다는 신호로 해석 가능한 대목입니다. 

이와 함께 미국선급(ABS·American Bureau of Shipping)과 함께 조선소 내 휴머노이드 활용을 위한 인증 표준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ABS는 선박과 해양 설비의 안전 기준을 정하는 국제 인증 기관으로, 이곳의 승인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로봇도 실제 조선소 현장에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검증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증된 트랙 레코드 없이는 조선소에 곧바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페르소나AI가 ABS와 협력을 서두른 이유입니다.

올해 말 시제품, 내년 울산 도크로…카운트다운 시작 
HD현대중공업과 페르소나AI의 로드맵은 꽤 구체적입니다. 올해 말까지 시제품 개발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울산 조선소에서 본격적인 현장 실증과 상용화에 들어갑니다.

HD현대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게 없는 구조입니다.

페르소나AI가 제시한 비즈니스 모델은 RaaS(Robotics-as-a-Service), 즉 구독형 서비스입니다.

초기 자본 투자 없이 로봇을 도입할 수 있어 재무 리스크가 낮고, 동시에 스마트 조선소의 글로벌 레퍼런스 1호라는 타이틀도 노릴 수 있습니다.

HD현대가 보유한 세계 최대 조선소 도크가 이 로봇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됩니다. 조선소라는 극한의 환경이 페르소나AI를 검증하는 동시에, 페르소나AI가 조선소를 바꾸는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NASA에서 태어난 로봇이 울산에서 증명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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