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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태우고 거수기 내쫓았다…유통가 밸류업 2.0 원년

SBS Biz 조슬기
입력2026.03.29 10:24
수정2026.03.29 10:28

[롯데쇼핑 제56기 정기 주주총회 (사진=연합뉴스)]

과거 '짠물 배당'과 '오너 중심 경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할인)를 불러온 유통가 정기 주주총회가 올해는 과거 구태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자사주 소각과 배당 증액 카드를 꺼내 들면서 달라진 행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추진한 상법 개정안이 기업 현장에 본격 반영되면서 이사회가 대주주의 거수기에서 벗어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대변하는 '밸류업 2.0' 시대가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먼저 올해 주총의 가장 큰 특징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자사주를 소각해 주식 가치를 실질적으로 높이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롯데그룹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체질 개선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지난 24일 열린 롯데지주 주총에서는 발행주식 총수의 5%에 해당하는 1663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이 확정됐습니다. 유통 주식 수를 줄이면 주당 순이익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자사주 제로(0)'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현대지에프홀딩스 등 10개 계열사는 이번 주총 시즌에 35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습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자사주를 쌓아두지 않고 즉시 소각함으로써 주주 가치 훼손 우려를 원천 차단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주총은 한국 기업 특유의 저평가 구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려는 실질적인 시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밸류업 2.0'의 원년이라 부를 만하다"리고 평가했습니다. 

투자자가 배당 수익률을 확인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선진국형 배당 제도'의 도입과 배당금 증액도 눈에 띄는 변화로 꼽힙니다.

지난 26일 주총을 연 이마트는 주당 배당금(DPS)을 전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25% 인상했습니다. GS리테일도 주당 배당금을 전년보다 20% 올렸습니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배당액을 먼저 확정하고 주주를 결정하는 '선(先) 배당액 확정'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그동안 국내 증시는 배당금을 모른 채 주식을 사야 했던 구조였으나, 이번 제도 도입으로 투자 예측 가능성을 높여 투자자금 유입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장치들이 마련됐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 전체'로 확대된 결과입니다.

롯데쇼핑은 지난 20일 주총을 통해 정관에서 '집중투표 배제'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소액주주가 원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기 용이하게 만드는 집중투표제를 수용한 것은 정부의 밸류업 기조에 맞춰 소수 주주의 목소리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이사회의 전문성 보강도 잇따랐습니다.

GS리테일은 정보통신(IT) 및 인공지능(AI)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리테일 테크 부문의 투명성을 높였고, BGF리테일은 이사회 내 보상위원회를 활성화해 경영진 보수의 객관성을 확보했습니다.

한화갤러리아 역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해 감시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자산 2조 원 이상 대형 유통사를 중심으로 '독립이사' 비중이 대폭 확대됐습니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이 엄격히 적용되면서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감시자들이 전면에 배치됐습니다.

화장품 업계의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역시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로 변경하며 오너의 거수기가 아닌 주주의 독립적 대리인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유통업계의 이러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저 PBR'(주가순자산비율) 탈출을 위해서는 수익성 증명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증액은 기업의 기초체력을 나누는 행위인 만큼,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강자들과의 무한 경쟁 속에서 본업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밸류업의 동력이 조기에 식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주총에서 각 사 최고경영자(CEO)는 주주 환원과 동시에 'AI 물류 혁신'과 '글로벌 영토 확장'을 3년의 핵심 생존 전략으로 제시하며 시장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재무적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들이 사업 모델 혁신과 수익성 개선을 통해 시장에 지속 가능한 성장 스토리를 제시해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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