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의 굴욕' LG엔솔… 5.8조 재무약정 '빨간불'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직격탄을 맞은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엔 재무약정 위반이라는 또 다른 암초를 만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약정 위반으로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로 분류된 금액만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채권단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즉시 상환 요구를 받을 수 있는 차입금 규모도 5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6일 LG엔솔이 지난주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ANZ·HSBC·JP모건 등 글로벌 은행 컨소시엄과 유럽투자은행(EIB)은 LG엔솔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총 차입금이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의 4배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LG엔솔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력보다 4배 이상 빚을 지지 않고 잘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배터리 공장 증설이 이어지면서 차입금이 급격히 불어났고, 결국 은행과의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실제 LG엔솔의 지난해 전체 차입금(사채 포함)은 22조5000억 원으로 전년(15조4000억원)보다 7조 원 넘게 늘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3461억 원에 그쳤습니다.
한 마디로 차입금은 급격히 불어난 반면 수익성은 떨어지면서 4배 미만 약정이 깨진 겁니다.
이미 터진 것과 터질 수 있는 것
약속을 어기면 은행은 계약상 만기 전이라도 즉시 상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현실이 된 부분은 사업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NZ·HSBC·JP모건 신디케이션론 8820억 원과 EIB 차입금 2699억 원, 합하면 약 1조 1500억 원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부채로 재분류됐습니다.
신디케이션론은 만기까지 7년이 남아 있었고, EIB도 아직 만기 전이었지만 약정 위반에 따라 단기 부채로 성격이 바뀐 것입니다.
더 큰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또 다른 약정비율 미충족 시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는 차입금 규모가 5.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이는 채권단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즉시 상환 요구를 받을 수 있는 규모입니다.
LG엔솔의 2025년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조8천000억 원 수준입니다. 5조8000억 원은 현재 현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악정 위반 협상 중인 LG엔솔
LG엔솔 측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사업보고서를 통해 대응 현황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ANZ·HSBC·JP모건 신디케이션론의 경우 대주단과 차입계약 조건을 다시 협의 중이며, 합의가 이뤄지면 약정 위반 상태가 해소된다는 입장입니다.
EIB 차입금도 약정 위반에 대한 면제, 이른바 '웨이버(Waiver)' 절차를 은행 측과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LG엔솔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신디케이션론이 걸린 인도네시아 법인의 경우 채권단과의 협상이 거의 다 진행됐고 무리 없이 마무리되고 있다"라고 답했고, "EIB 차입금이 걸린 폴란드 법인도 내년이 만기라 부채를 거의 다 상환한 상태여서 계약 변경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협상 완료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흐름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
다만, 언제 어떤 조건으로 마무리될지 타결 시점과 조건은 명시하지 않은 채 사업보고서 공시일을 맞이하면서 재무약정 위반의 실질적인 무게를 두고 해석은 여전히 분분한 상황입니다.
만약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된다면 1조 1500억 원의 단기 재분류 문제는 해소되지만, 약정 미충족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기한이익상실 조항이 적용되는 5조 8000억 원 규모의 차입금 전체로 상환 압박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합니다.
캐즘이 남긴 두 가지 고민…쪼그라든 실적 그리고 빚
첫번째는 실적입니다. 2025년 영업이익은 1조 3400억 원으로 전성기인 2023년(2조1600억원)의 62% 수준에 그쳤습니다. 매출도 23조 7000억 원으로 2023년(33조7000억원) 대비 30% 쪼그라들었습니다.
두번째는 빚입니다. 미국·유럽 공장 증설 투자가 이미 집행된 상황이지만 글로벌 전기차 수요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빌린 돈은 어느새 22조 5000억 원으로 불어난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빚은 현재 은행과 맺은 재무 약정 벽에 부딪힌 상태입니다.
협상 타결이 빨간불을 끄는 임시방편이라면, 근본 해법은 실적 개선입니다. 당장의 약정을 다시 충족하려면 총 차입금이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의 4배 이내로 들어와야 합니다.
산술적으로 총 차입금 22조 5000억 원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EBITDA가 5조 6000억 원을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25년 EBITDA는 약 5조 원으로 아직 6000억 원이 모자랍니다.
결국 협상을 통한 단기 처방보다는 실적 개선을 통한 지표 회복이 본질적인 해법입니다.
다만 글로벌 전기차 수요의 반등 시점이 불투명해 재무약정을 둘러싼 LG엔솔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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