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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추락·벤틀리 비틀…'약물운전' 기준이 없다 [취재여담]

SBS Biz 우형준
입력2026.03.10 16:08
수정2026.03.10 17:44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방송인 이경규 씨는 공황장애 약을 복용한 뒤 운전을 하다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벌금 200만 원 약식명령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약물 운전' 사건인데도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벽산그룹 3세 김 씨는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뒤 운전을 한 사건에서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약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 능력이 저하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인데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음주는 법 위반, 약물은 아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질병이나 약물의 영향 등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주운전과 달리 '어떤 약물을 어느 정도 복용하면 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황호준 변호사는 이 점이 법원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황 변호사는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질병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처럼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에 따라 처벌 여부나 처벌 수위가 정해지는 것과 달리, 약물운전은 어떤 약물을 어느 정도 복용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황 변호사는 이 때문에 사건마다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유명 연예인 사건과 이번 사건처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이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라는 표현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실제로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는 약물운전에 대한 명확한 입법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복용 후 운전하면 안되는 약, 있다 없다?

약물의 특성도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공황장애 치료제인 벤조디아제핀 계열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등 일부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합니다. 졸음이나 판단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약물운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범진 교수는 "술은 마시지 않으면 되지만 약은 아픈 사람이 복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약을 먹고 운전을 하면 안 되는지 기준이 없다 보니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약물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많은 약물이 뇌에 작용해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졸음, 환각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운전에 필요한 신체 반응 속도나 운동 기능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약물 종류가 워낙 많아 음주운전처럼 단순한 수치 기준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이 교수는 "약물은 종류가 수천 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혈중 농도 기준을 일일이 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해외처럼 약물 종류에 따라 일정 시간 동안 운전을 제한하는 방식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약 기준 해외는 있는데 국내는 無
관련해 해외에서는 일정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과 독일은 일부 향정신성 의약품 복용 후 약 24시간 운전을 제한하고 있고, 호주는 약물 종류에 따라 약 12시간 정도 운전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처방 약물에 대해 '운전 시 주의' 수준의 안내만 있을 뿐 명확한 법적 기준은 없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약물 영향이 의심되는 운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프로포폴을 투약한 채 포르쉐 차량을 몰다 반포대교에서 추락 사고를 낸 사건이 있었고, 차선을 넘나들며 비틀거리다 적발된 '벤틀리 약물운전 혐의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잇따른 약물운전 사건을 계기로 처벌 규정도 강화됐습니다.

다음 달 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약물운전 처벌은 기존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됩니다.

다만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관련 기준 마련에는 여러 부처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물운전 기준은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재는 주의 차원의 안내 메시지를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벌은 강화됐지만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셈입니다.

공황장애 치료제 벤조디아제핀,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약물 복용은 점점 흔해지고 있습니다.

약 복용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약물운전 기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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