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생애 첫 대출까지 9억 털린 SC제일 VIP…은행은 나 몰라라

SBS Biz 오수영
입력2026.02.20 17:34
수정2026.02.20 18:58

[앵커] 

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의 돈을 갈취해 가면서도 일상적 거래로 위장하게 되면 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소식, 얼마 전에도 전해드린 바 있는데요.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9억 원이 넘는 거액을 피해 본 사례가 또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장기간 은행의 자산 관리를 받아온 고객이었지만, 은행 시스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수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A 씨는 지난해 3월 중순부터 6주 동안 12차례에 걸쳐 총 9억 3,000만 원을 피싱범에게 직접 송금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A 씨는 비즈니스 SNS '링크드인'에서 외국계 IT 대기업 직원을 사칭한 피싱범을 만나게 됩니다. 

피싱범은 수개월간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하다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한 AI 퀀트 투자를 제안합니다. 

A 씨는 현금 4억 3천만 원과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 5억 원까지 9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습니다. 

A 씨가 원화를 이체한 만큼의 테더(USDT)가 피싱범이 만든 사이트에 쌓이는 걸 확인하고, 출금도 가능하다고 단언하는 피싱범을 믿고 대출까지 받게 된 겁니다. 

A 씨는 대출이 실행되자마자 10여분 간격으로 약 1억 원씩 5회에 걸쳐 5억 원을 피싱범들에게 송금했는데, 이 과정에서 SC제일은행 직원 누구도 A 씨에게 피싱 여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A 씨가 총 9억 3,000만 원을 이체하는 동안 SC제일은행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은 단 한 차례도 경고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SC제일은행은 "A 씨 금융 거래는 다수의 금융기관으로 각기 다른 명의인에게 한 달 반이라는 긴 기간 동안 동일한 스마트폰으로 거래됐기 때문에 이상거래탐지시스템에 감지될 만큼의 징후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감독원은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 SC제일은행이 A 씨의 배상 요청을 수용하도록 권고하기 어렵다"면서 "소송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는 방법도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SC제일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건데, 왜 이런 일이 은행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건지 짚어보겠습니다.

오수영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앞서 SBS Biz가 지난 9일 보도했던 한국투자증권·KB국민은행의 시스템 구멍 사례와 이번 경우가 비슷한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피싱범들은 일부러 며칠씩 간격을 두고 피해자가 여러 개 대포통장에 송금하도록 했습니다.

대포통장들은 명의뿐만 아니라 금융사도 다 달랐습니다.

마치 여러 지인들과의 일상적 거래인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은행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을 피해간 겁니다.

특히 A씨가 송금한 대포통장은 모두 6개 금융사의 6개 계좌였는데 그중 하나인 부산은행 한 곳만 "자금세탁을 위한 대포통장으로 의심된다"고 경고해왔습니다.

부산은행 직원이 SC제일은행측에 연락해 대포통장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SC제일은행은 A씨에게 전화해 단순 경고만 하고 추가 송금을 막거나 피싱 위험을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PB 고객으로서 2009년부터 15년 넘게 장기 거래해온 고객의 거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어찌 보면 기계적인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 셈입니다.

[앵커]

이상거래 탐지 결과에 은행별로 차이가 왜 생기는 건가요?

[기자]

개별 은행은 각자 '기밀'에 부치고 있는 이상거래 탐지 기준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운영 중인데, 고객 현황과 거래 상황 그리고 금융사별 역량에 따라 탐지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은 사람이 수기로 보는 게 아니라 은행마다 일정한 룰을 만들어놓고 시스템이 실시간 필터링을 하는 건데,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작정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법을 쓰면 은행도 당해낼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이같은 한계를 보완할 방법은 없는건가요?

[기자]

금융감독원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가 멈춰 서 있는 금융사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 책임 금액이 정해지고 법안이 통과되면 은행들이 과거보다 이상거래탐지시스템 고도화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은행의 피싱 무과실 배상 책임 한도는 1500만~2000만 원 선에서 정해질 것이라는 게 국회 안팎의 중론인데, 지난해 은행권이 로펌을 선임해 공동 대응에 나서기도 했던 등 반발이 큰 상황입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그럼에도 입법은 이뤄질 것"이라면서 "은행에 금전적 배상 책임을 지워야 은행들이 '제3자의 피해'가 아닌 '고객이 우리를 믿고 맡긴 재산의 손해'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오수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 SBS Medianet & SBSi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오수영다른기사
KB국민 이어 제일은행까지, 속수무책 뚫렸다
생애 첫 대출까지 9억 털린 SC제일 VIP…은행은 나 몰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