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된 초고가 신약…"신속등재 추진 중단하라"
SBS Biz 오정인
입력2026.02.09 12:50
수정2026.02.09 12:54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강당에서 '초고가 신약 치료효과 실태발표 및 신속등재 재검토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사진=SBS Biz)]
수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신약의 치료 효과가 40%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이에 시민·환자단체들은 정부에 더 면밀한 평가체계를 마련해, 검증되지 않은 신약에 더 이상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오늘(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이같은 내용의 '초고가 신약의 치료 효과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진료비는 100조원대를 이미 넘어섰고, 약품비도 빠르게 늘고 있다"며 "2024년 기준 26조원대인데, 건강보험료율 상승세보다 더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단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공단이 협상한 신약 약품비는 연평균 13%씩 증가했습니다. 건강보험료율 인상률(1.5%)의 8배 수준입니다.
하지만 초고가 신약으로 인한 환자들의 부담만 커질 뿐, 실제 치료 효과는 기대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부대표는 "2024년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13~2017년 미 식품의약국(FDA) 가속 승인을 통과한 항암제를 5년 이상 추적 관찰한 결과 41%가 전체 생존율이나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했고, 나머지 15%은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며 "또한 약 22%는 효능 부족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불응성 B세포 급성 림프성 백혈병 치료를 위한 킴리아주의 성과를 환자들의 무진행 생존율(암이 진행하기 전까지 생존한 기간) 등 지표로 평가한 결과, 사용 환자의 59%는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민·환자단체들 해당 약품의 1회당 상한 금액은 3억6천만원으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킴리아주 급여 적용에 쓰인 1천296억원 중 766억원 가량은 투입에 따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약가 개편안을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등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신속 등재' 정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복잡한 검증 절차를 최소화해 환자의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제약사가 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기존 150일이 걸리던 '임상적 유용성 평가'와 '경제성 평가' 절차를 생략하고 30일만에 급여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에 시민·환자단체들은 "임상적 유용성 평가와 경제성 평가가 생략됐지만 이를 보완할 사후평가나 방법론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효과가 좋은 약'을 신속히 도입하는 것인데, 정부의 방안은 신약에 대한 옥석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신약으로 위험과 약값 부담을 환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더구나 환자들이 신약의 효과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알지 못한 채 신약을 사용함으로써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경실련 보건의료위원)는 "프랑스 등에서는 이른바 '꿈의 신약'으로 알려진 약들이 생각보다 효과가 드라마틱하지 않을 거라는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며 "견고한 평가체계를 강화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당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서 경제성 평가를 생략한 채 도입된 고가 의약품에 대한 '상대적 임상개선정도'를 등급별로 확인한 결과 2등급(중요한 개선) 이상을 받은 신약은 럭스터나주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신약이 대체약제 대비 경미한 개선(4등급)을 보이거나 개선이 없는(5등급)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면서 불확실한 효과를 지닌 초고가 신약으로 인한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해선 사전 승인제 적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권 교수는 "킴리아주에 건보 재정이 766억원이 쓰였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며 "외국은 약값을 상당히 인하하거나 등재 목록에서 삭제하거나, 삭제를 하더라도 효과를 보인 일부 환자에게는 별도 지원체계를 마련해 치료의 역속성을 보장한다"며 "복잡하지만 면밀한 평가 체계, 세밀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정부의 정책이 환자들의) 절박함을 방패 삼아 효과가 불확실한 약을 빠르게 들여오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라며 "정부가 불확실한 위험과 재정 부담을 환자와 국민들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시민·환자단체들은 ▲신약 효과 평가결과 전면공개 ▲구체적이고 엄격한 사후평가 마련 ▲고가 신약의 재정 조달 방안 마련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 등을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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