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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하메네이, 4년전 '히잡 시위' 넘겼지만 …47년 만에 신정체제 최대 위기

SBS Biz 김종윤
입력2026.01.12 17:19
수정2026.01.12 17:23

[9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시위 모습. 온라인상에 오른 영상을 캡처한 것.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란에서 경제난으로 촉발된 거리 시위가 신정(神政) 체제를 거부하는 범국민적 분노로 번지면서 보름째 테헤란을 포함한 곳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갖는 신정 체제 이란에서는 크고 작은 민심의 저항이 있었지만, 이번 시위는 특히 중동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얼음판에 놓인 가운데 국제사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47년 신정 체제의 정점에 선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표면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지만, 서방 전문가들은 그가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구호에 둘러싸여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 시위 원인은 경제난이 촉발…4년 전 히잡 반대 시위와 달라

이번 시위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민심 폭발이 '방아쇠'가 됐다는 점에서 선거 결과나 사회적 억압 등으로 촉발됐던 2009년이나 2022년 시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2009년 당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으로 귀결된 대선 결과를 놓고 야권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이를 뒤집진 못했습니다.

또 2022년 히잡 반대 시위는 히잡 미착용 혐의로 체포됐던 당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를 불씨로 분노와 저항이 들불처럼 번졌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수백명의 사망자를 낸 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지난달 리알화 가치 폭락을 계기로 서방의 제재에 따른 물가 폭등, 생활고 가중에 시달리던 민심의 분노가 상인을 구심점으로 거리로 터져나온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선임 중동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던 윌리엄 어셔는 "1979년 이후 이란 최대의 순간"이라며 "정권은 지금 매우 험난한 상황에 놓여 있고, 그 주된 원인은 경제"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12일 보도했습니다.

그는 "정권이 다시 통제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좁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도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시위대, 정치 체제 변화까지 요구

워싱턴포스트는 시위대 구호가 단순한 경제난 해소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9일 테헤란 등에서 열린 시위 영상에는 1979년 이전 왕정 시기 이란 국가를 들고 있거나, 테헤란에서 대형 광고판에 왕정에 우호적인 문구를 스프레이로 쓰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이슬람 혁명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에 이어 1989년부터 이란 권력 정점에 있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직접 겨냥한 구호도 등장했습니다.

시위대가 외치는 "팔레비 왕조가 돌아올 것", "세예드 알리는 무너질 것"과 같은 구호는 그동안 신정체제의 철권통치 하에서 절대 금기로 통하는 것들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팔레비 왕조 마지막 샤(국왕)의 아들로서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레자 팔레비 왕세자가 온라인을 통해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시위대의 이 같은 구호는 왕정복고를 바란다기보다 현 체제 타도를 위해 동원된 구호라는 해석이 강합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네이트 스완슨 선임 연구원은 팔레비 왕세자는 "해외 거주 이란인 일부에서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이란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며, 2022년에 정권에 반대하는 해외 거주 이란인의 단결 시도가 무산된 데 대해 그의 지지자들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변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커지는 개입주의

이번 시위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이 '개입주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운데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시위 초기 2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늘 그랬듯 평화 시위대에 발포해 폭력적으로 살해하면 미국은 그들을 구출하러 나설 것"이며 "우리는 완전히 준비된 상태이며 출동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이란 시위 상황에 군사력 동원 등으로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당초 정치적 수사로 해석됐지만, 트럼프 정부가 다음날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에 나서면서 현실화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 관련 기자들 질문에 "우리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군도 이 사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몇몇 강력한 선택지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미국에 협상을 제안해 왔다면서 "회담은 준비되고 있다"며 대화 가능성도 함께 열어놓은 상태입니다.

◇ 하메네이 정권 입지 약화…"'12일 전쟁'으로 임계점"

전문가들은 과거 시위와 달리 약화한 하네메이 정권 입지도 이번 시위 상황이 과거와 다르게 전개되는 요인으로 지목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쟁으로 약해진 이란 정권이 가장 혹독한 도전을 맞닥뜨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습니다.

지난해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 나탄즈 핵시설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12일 전쟁'은 미국까지 가세해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3곳의 핵시설을 타격한 끝에 휴전됐습니다.

당시 이란이 드론을 동원해 이스라엘에 반격하긴 했지만, 이 전쟁은 이란 정권이 경제적 번영은 주지 못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지켜 줄 것이라는 이란 국민들의 믿음을 깨버렸고, 이것이 결정타가 되면서 서방 제재에 따른 경제난을 감내해온 국민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입니다.

이란이 이스라엘 공격을 막기 위해 막대한 국부를 써가며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이라 불린 대리 세력을 지원했지만, 소용 없었음이 드러난 것도 큰 실망감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GC) 알리 바에즈 이란 담당 국장은 "이란 정권이 국민에게 번영이나 다원주의를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안전과 안보를 제공한다고 수년간 주장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판명난 것"이라며 "이제 국민들이 '참을만큼 참았다'고 말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WSJ에 말했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카림 사자드푸어 선임연구원은 "혁명정부 초기에는 외부와의 전쟁이 정권을 강화하지만, 군사적인 굴욕을 당하면 독재정권 말기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사자드푸어 연구원은 잭 골드스타인 조지메이슨대 교수와 디애틀랜틱 공동 기고문에서는 현 이란 체제를 "좀비 정권"으로 규정하고, "잔혹한 탄압이 정권의 장례식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맥박을 되살릴 수는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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