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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한미 제련동맹' 카드…경영권 분쟁 새 국면 맞나

SBS Biz 조슬기
입력2025.12.18 15:39
수정2025.12.20 10:03

[앵커]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10조 원 규모의 제련소 투자를 전격 발표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고려아연 창업주 3세인 최윤범 회장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MBK·영풍 측은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정부는 일단 한미동맹에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슬기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고려아연이 발표한 미국 투자 규모가 상당한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고려아연이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모두 74억 3천 200만 달러, 우리 돈 약 10조 9천억 원 규모의 미국 테네시주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투자를 의결했습니다.

미국 국방부, 상무부와 함께 현지 전략적 투자자들과 합작법인 '크루서블 JV'를 설립하는 구조입니다.

이 합작법인이 약 2조 9천억 원 규모로 고려아연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약 10%를 확보하고, 고려아연은 지분 9.99%를 보유하게 됩니다.

안티모니 같은 방산 핵심 소재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고순도 황산을 생산하는 시설로, 미국 입장에서는 핵심 광물 공급망 안보와 직결된 전략 프로젝트입니다.

내년부터 부지 조성과 기반 공사, 시공 업체 선정, 장비 발주 등을 시작해 2027년부터 착공에 들어가 2029년 완공이 되면 아연, 연, 동 등의 제련 설비를 우선적으로 가동하고 안티모니, 인듐 등 핵심 전략광물로 생산 품목을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

[앵커]

이건 말하자면 오너일가인 최윤범 회장 측 결정인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대주주 MBK·영풍 측은 즉각 반발했죠?

[기자]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발표 직후 신주배정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최윤범 회장의 지배력 방어를 위해 특정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라며 "주주 권리와 회사 지배구조를 심각하게 왜곡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상법 제418조가 경영상 목적이 아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에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 참여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며 "회사가 실제로 자금조달을 필요로 했다면 가장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인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선택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신주가 발행되면 영풍과 MBK 입장에서는 고려아연 지분이 희석될 수밖에 없겠죠?

[기자]

현재 영풍·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44.24%입니다.

최윤범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19.41%입니다.

한화 등 우호 지분(12.63%)을 모두 포함해도 32%대에 그칩니다.

만약 3자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질 경우 영풍·MBK 측 지분은 40%대로, 최 회장 측 지분도 29%대로 낮아집니다.

그렇지만 합작법인이 발행주식 총수의 10.3%를 확보하게 돼, 최 회장 우호 지분이 39%로 영풍 측과 대등해질 수 있습니다.

[앵커]

경영권 분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계산된 행보라는 지적에 대해 고려아연은 현재 어떤 입장입니까?

[기자]

고려아연 측은 순수한 사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대미 투자라며 영풍 측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고려아연 측은 핵심광물 수요가 큰 신시장을 미국 정부 지원 속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업가치 증대가 기대돼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장 건설과 운영, 기술 통제 역시 고려아연 미국 현지 자회사를 통해 이뤄진다며, 고려아연이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해 기술 유출 우려도 기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미 정부에 1억 달러 상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과 관련해 현지 제련소를 건설 인허가 승인과 규제 관련 자문에 대한 제반 서비스 비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내 자회사 신주인수권 14.5%를 포함해 최대 34%까지 취득할 권리를 부여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타 핵심광물 기업 등에 지분 투자할 때도 통상적으로 요청하는 사항이라며, 미 정부 출자나 지원금과 비교하면 합리적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용진 /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 가능한 빨리 미국 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중요한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것이고요. 문제는 어떻게 실행하느냐의 이슈일 것 같아요.]

[앵커]

영풍측은 과도한 재무 부담에 대한 우려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요?

[기자]

고려아연의 자기 자본 대비 보증 비율이 높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지난 16일 공개된 고려아연 공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대출금 3조 4천 500억 원에 대해 4조 4,100억 원의 보증을 요구했습니다.

보증비율이 128%에 달합니다.

함께 돈을 빌려주는 JP모건 등 민간 투자자들이 요구한 보증비율도 106%입니다.

고려아연은 이번 보증으로 자기 자본의 110%인 8조 3천 931억 원을 우발채무로 떠안게 됐습니다.

자기 자본 대비 100%를 넘는 보증은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지급보증액의 금액만 볼 것이 아니라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측면의 보증 성격과 통제 가능성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려아연 관계자 : 미국의 고려아연 제련소는 기존 물량 대응 목적이 아닌 미국의 신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 핵심광물 시장의 구조적 성장에 따라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의 생산량·판매량 역시 증가가 예상됩니다.]

[앵커]

아무래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상반된 주장과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지분 문제를 떼어 놓고 한미 관계와 산업적 효과만 놓고 보면 어떻습니까?

[기자]

단기 재무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장기 전략 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라는 평가가 대체적입니다.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핵심광물·방산 공급망의 사실상 고정 파트너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안티모니 등 희소금속 시장에서 고려아연이 갖는 전략적 가치와 가격 결정력 등 입자가 전보다 강화되고, 미국 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른 부산물 등 수요 확대도 기대됩니다.

핵심광물 공급망은 선점 효과가 큰 만큼, 무엇보다 경쟁사가 진입하기 어려운 정책·안보 기반 진입 장벽을 확보한 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고려아연의 미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희토류나 희귀 광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법원의 판단은 어떨 것으로 보입니까?

[기자]

대미 투자의 주된 목적을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성장과 투자 유치가 목적인지, 경영권 방어가 목적인지 기준으로 따져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의 판례들을 살펴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경영권 방어용 유상증자에 제동이 걸렸지만, 현대중공업은 사업 확장이라는 주된 목적을 인정받아 유증이 허용된 바 있습니다.

[이정환 / 한양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 지금 (고려아연의) 경영활동 자체가 크게 어긋나는 활동은 아니고 미국 투자가 지금 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까 (3자배정 유상증자가) 필요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그리고 이제 조인트벤처 형태로 가는 것이 주주한테 이익을 극대화하느냐 안 하느냐는 이슈라서요.]

따라서 고려아연의 이번 '저지분 고액투자' 구조와 맞물린 자금 조달의 성격을 불리한 계약으로 해석할 것인지, 미국 시장 선점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한미 동맹이라는 전략적 가치로 볼 지가 분쟁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미 동맹이라는 대의명분과 경영권 분쟁이라는 현실이 향후 법정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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