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시선] 운동비 주고, 건강하면 덤도 주는 나라들…우리는?
SBS Biz 서주연
입력2025.12.15 09:33
수정2025.12.16 13:47
[정운현 한국문화정보원 원장]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병실에 누워서 돈을 세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죽고 없다면 부귀도, 명예도 아무 소용 없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건강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근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위기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통계에 의하면 의료비 지출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장기 요양 부담 역시 사회 전체의 구조적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그간 우리 당국의 정책은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방이 치료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원칙을 국가 정책의 중심축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건강한 국민을 늘리고, 이미 건강한 사람에게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국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동시에 국가 재정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운동비 지원했더니 국민 건강 'UP'
최근에 나온 “건강한 국민에게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특이한 발상이 아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영국, 뉴질랜드, 독일, 싱가포르 등 몇몇 선진국에서는 검증을 거쳐 이미 정책으로 구현하고 있다. 지원 방식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건강한 국민 만들기’로 다 똑같다.
영국은 의료진이 비만·고혈압 등 위험군 국민을 지역 체육시설로 직접 연계하는 방식이다. 국민보건서비스와 민간 피트니스센터가 역할을 분담하면서 참여자는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운동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즉 운동 참여를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를 미리 줄이는 방식이다.
뉴질랜드도 영국과 비슷한 구조다. 의료진이 운동 필요군을 지역 스포츠클럽으로 처방하듯 잇달아 연결해 준다. 민간 체육시설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비용은 국가가 부분적으로 지원한다. 참여자의 90% 이상이 건강 개선 효과를 체감했다는 사실은 ‘예방 중심 국가’가 얼마나 큰 사회적 편익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독일은 국민의 운동 강좌 비용을 건강보험이 최대 80%까지 지원하는 ‘예방강좌 제도’를 운영한다. 강좌는 외부의 민간 전문기관과 협력하여 제공한다. 독일의 경우 예방 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모델인데 이는 예방을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공공 의무로 본 것이다.
싱가포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의 디지털 스포츠 크레딧을 지급한다. 오직 운동·체육 활동에만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하나로 시설 예약, 프로그램 등록,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통합해 국민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운동으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각종 활동 데이터를 정책에 직접 활용하기도 한다. 단순한 인센티브 정책이 아니라 ‘건강 데이터 기반의 국가 시스템’으로 활용된다. 민간 체육시설 입장에서도 정부 보조금과 안정적 수요가 결합해 윈-윈 구조가 된다. 민관 협력의 가장 바람직한 사례라고 할만하다.
복지예산 골머리?…건강 지원하니 '해결'
해외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건강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가 의료비는 줄어든다. 그리고 그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인센티브다. 인센티브는 단순한 현금성 포퓰리즘이 아니라 국민 개인의 행동을 예방적 방향으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인 것이다.
한국의 건강정책도 이제는 ‘예방 중심’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특히 고령층의 건강 유지가 국가 전체 의료비 절감에 미치는 효과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건강한 노인이 많아질수록 장기 요양 부담은 줄어들고, 생산가능 인구 역시 유지된다. 이는 단지 복지정책이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의료진이 운동을 처방하고 지역 체육시설과 연계하는 시스템을 한국형으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싱가포르처럼 운동에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크레딧과 같은 전용 인센티브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공공 체육시설 운영에 민간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지역 간 건강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현행 ‘문화비 소득공제’ 제도를 개선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다. 2018년 도서·공연 티켓 구입비를 시작으로 박물관·미술관 입장료, 신문 구독료, 영화관람료에 이어 금년 7월부터 수영장·체력단련장 등 체육시설 이용료로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이로써 갈수록 수혜자가 늘고 문화 여가 소비 역시 증가 추세여서 고무적이다.
소득공제 '편식' 없애야
시행 7년째를 맞은 문화비 소득공제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우선 소득 기준 제한을 ‘연소득 7천만원’에서 ‘연소득 1억원’으로 상향시켜 2025년 중위소득 기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체육 분야의 헬스, PT 등 교육 및 강습비는 50%만 적용토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100%로 확대하고 필라테스, 요가, 테니스, 태권도, 탁구, 달리기 트레이닝 등으로 대상 분야도 넓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관광, 스포츠 관람료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관련 용품 등으로의 소비 활성화도 기대된다.
문화비 소득공제 사업이 성공하려면 민간업자들의 협조도 절실하다. 관련해 현재는 정부 지원은커녕 별도의 단말기 설치 및 결제 모듈 시스템 개발, 추가 카드 수수료 발생 등 업자들이 부담만 안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비 소득공제 대상 사업장으로 등록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현장에서 만난 체육시설 사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점을 호소했다.
민간 사업자 협조를 위한 방안으로, 현재 근로소득자 대상인 공제 대상을 법인이나 단체 회원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또 분리 결제에 따른 단말기 설치 및 모듈 개발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단말기 수수료(1.6%~2.2%)를 1% 수준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페이, 제로페이 등은 카드 수수료가 없다.
문화비 소득공제는 세수 감소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소비 촉진으로 국내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건강한 어르신' 곧 국가적 이익
고령화 사회를 맞아 건강한 어르신들을 양산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복지 차원을 넘어 국가 재정 운용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한 노년이 많아질수록 의료비가 줄고, 요양 부담은 감소하며, 결과적으로 미래세대의 부담도 완화된다. 건강하게 늙는 것이 최고의 사회공헌인 셈이다.
그러나 문화·체육활동을 장려하겠다며 마련한 문화비 소득공제 제도는 근로소득자에게만 문을 열어놓고, 정작 건강 관리가 절실한 청소년과 노년층, 전업주부는 제도 밖에 남겨두고 있다. 건강 증진이 국가적 목표라면, 그 혜택 역시 특정 계층에 한정돼서는 안 된다. 이제 문화와 체육에 대한 지원을 생애주기 전반으로 확대해 모두가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다.
국민이 건강하면 저절로 강한 나라가 된다. 질병 발생 후 의료비 감당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예방에 과감히 투자하는 국가’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건강한 국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은 미래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돌아오는 확실한 이익이다.
기고 / 정운현 한국문화정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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