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의 역풍' 통신3사 CEO의 엇갈린 운명 [취재여담]
SBS Biz 조슬기
입력2025.10.31 12:50
수정2025.11.01 09:04
국가 기간망을 책임지는 통신사들이 잇따라 해킹 피해를 입고서도 즉각적인 대응에 실패하면서 통신 보안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기 때문입니다.
올해를 불과 두 달 남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지난 4월 발생한 대규모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USIM) 해킹 사태와 9월부터 본격화된 KT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및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 일련의 사태는 통신 3사 CEO들의 운명을 갈라놨습니다.
글로벌 'AI(인공지능) 컴퍼니'를 외쳤던 유영상 전 SK텔레콤 대표이사는 4년 간의 재임 끝에 해킹 사태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영섭 KT 대표는 현재 진행형인 무단 소액결제 피해·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사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도 내부자 계정 관리 APPM(내부 패스워드 통합관리 시스템) 서버 해킹 및 폐기 의혹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해킹 유형은 통신사마다 달랐습니다. SKT는 유심 정보가, KT는 소액결제 정보가, LG유플러스는 서버 계정이 각각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부실한 보안'과 '초기 대응 실패'였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SKT는 최근 유 전 대표를 경질하고 정재헌 신임 CEO를 선임했습니다. 대규모 유심 해킹 사태로 2천700만 명의 가입자 정보가 유출되고 5천억 원 규모의 보상금(고객 감사 패키지) 부담이 3분기 적자로 이어지면서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비록 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SK수펙스추구협의회 AI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룹 내에서 여전히 역할을 맡게 된 건 분명 위안입니다. 그러나 유심 암호화 미흡, 신고 지연 등의 과실이 그의 입지를 무너뜨렸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KT는 김 대표의 퇴로를 열어 놓은 상황입니다. 김 대표가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태를 수습하고 난 뒤 CEO로서 합리적이고 마땅한 수준의 책임을 지겠다며 사실상 사퇴를 시사했기 때문입니다.
불법 기지국(펨토셀) 해킹으로 무단 소액결제 피해가 잇따라 불거질 당시 KT는 초기에 피해를 부인하다가 사건 발생 16일 만에야 해킹을 인정하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를 두고 재무통 출신인 김 대표의 보안 전문성 부족이 늑장 대응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가 스스로 내건 '사태 수습 후 책임'이라는 시한폭탄 초침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과 달리 가장 미묘한 처지에 놓인 건 홍 대표입니다. 서버 해킹 의혹과 관련해 직접적인 고객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해킹 정황이 제기된 서버를 폐기하고 운영체제를 재설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증거 은닉 의혹이 불거졌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내사에 착수하는 등 불안한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LG유플러스가 지난 7월 화이트해커로부터 해킹 제보를 받고도 침해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3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하며 인정도 부인도 아닌 애매한 입장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답을 내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갓 선임된 CEO로서 임기 초반 안정권에 있어야 할 그가 예상치 못한 해킹 의혹에 발목이 단단히 잡힌 셈입니다. 임기 초반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할 시기에 위기 대응 능력과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홍 대표의 부담도 한층 커졌습니다.
국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국가 기간망인 통신 인프라를 지키지 못한 대가는 혹독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자리에서 떠났고, 누군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깊은 모습입니다. 만약 이들이 10년 후 회고록을 쓴다면 올해를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2025년'이라는 제목의 장으로 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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