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여천NCC 갈등 현재진행형…한화 vs. DL, 의기가 부른 민낯 [산업 막전막후]

SBS Biz 류정현
입력2025.08.14 16:09
수정2025.08.14 17:15

[앵커] 

한화그룹과 DL그룹이 25년 넘게 동반 운영했던 합작사 여천NCC를 두고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부도위기인 여천NCC에 대한 자금지원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한화가 상대방 회장까지 공개저격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는데요. 

중국의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인 우리 석유화학 업계 민낯과 또 합작사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자세한 이야기, 산업부 류정현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본론부터 들어가죠, 이 두 회사 왜 싸우는 겁니까? 



[기자] 

여천NCC 구조부터 봐야 합니다. 

여천NCC는 지난 1999년 한화와 당시 대림, 지금의 DL이 화학계열사의 나프타분해공장, NCC를 분리해서 별도의 법인으로 만든 합작사입니다. 

한화와 DL이 각각 지분 50%를 들고 있고 이사회 6석도 절반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2년부터 3년째 이 여천NCC가 적자입니다. 

중국산 기초화학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여천NCC 생산제품은 가격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되는 겁니다. 

실적부진이 이어지면서 오는 21일까지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원료비 정산금 3천100억 원을 도저히 자체적으로 마련할 방도가 없었고요. 

자칫 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주주사인 한화와 DL이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앵커] 

두 주주회사, 친구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적이었죠? 

[기자]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관계자들이 지난달 말 대책 논의를 위해 회의를 가졌습니다. 

한화는 당장 급한 불을 끄자고 주장했습니다. 

각각 1천500억 원씩 지원해서 일단 살려놓고 자구책을 마련해서 연말까지 정상화를 시켜놓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DL은 달랐습니다. 

지난 3월에도 지주사들이 1천억 원씩 지원을 해줬는데 또 추가 자금을 요청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당장 지원보다는 근본적인 수익성 개선 방안이 먼저라고 주장했습니다. 

단순히 의견차이가 아니라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한화 측은 회의에 참석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내가 만든 회사지만 신뢰가 안 간다", "디폴트에 빠져도 답이 없는 회사에 돈을 꽂아 넣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고 회의 발언도 이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DL은 지난 11일 낸 입장문에서 "책임 있는 주주라면 회사 부실에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원인분석 없이 증자만 하는 건 해악을 끼치는 묻지 마 지원"이라고 날 선 반응을 내놨습니다. 

[앵커] 

결국 DL도 자금지원 결정하면서 급한 불은 껐죠? 

[기자] 

그렇습니다. 

일단 DL케미칼이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로 여천NCC에 자금 1천500억 원을 수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여 기간은 오는 20일부터로, 여천NCC 운영 경비로 쓰일 예정이고요. 

지원금액은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같은 규모입니다. 

[앵커] 

초반 입장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요? 

[기자] 

결국 곳간 차이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그룹 지주사 실적을 보면 한화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 726억 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350% 늘었습니다. 

반면 DL은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40%가량 쪼그라들었습니다. 

이익잉여금도 한화가 약 8조 원, DL이 6조 원으로 한화가 2조 원가량 더 여유 있습니다. 

한화는 최근 호황 사이클에 올라탄 방산 계열사들의 실적 호조로 앞으로의 상황도 괜찮은 상태입니다. 

정부가 이번 달 안에 석유화학산업 대책을 내놓는다 하니 지켜보자는 판단도 깔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석유화학과 건설 등 경기에 민감한 계열사가 주력인 DL은 한 푼 한 푼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일단 디폴트 위기는 넘겼는데, 한화가 다른 문제를 걸고넘어지기 시작했죠? 

[기자] 

여천NCC의 경영 부진에 DL책임을 강조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화는 여천NCC가 올해 초 국세청에 추징당한 1천6억 원을 꺼내 들며 이게 DL때문이라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국세청은 여천NCC가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주주사에 에틸렌 등을 지나치게 싸게 넘겼다고 추징금을 부과했는데요. 

한화는 이 중 약 96%가 DL과의 거래라며 여천NCC의 대규모 추징금이 대부분 DL때문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DL은 여천NCC가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낼 계획이라며 실제 문제가 있는지는 더 봐야 한다고 맞섰고요. 

또 에틸렌이라는 게 용도별로 공급가가 다르기 때문에 DL이 더 싸게 공급받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앵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갈등이 증폭될 거라는 부분입니다, 이유가 뭡니까? 

[기자] 

여천NCC가 두 회사와 각각 제품 공급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두 회사가 합작사를 세울 당시인 지난 1999년 맺은 공급계약이 지난해 끝났는데요. 

앞으로 두 회사가 여천NCC와 계속 거래를 할지, 한다면 납품단가는 어떻게 할지를 다시 정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또 맞붙고 있습니다. 

일단 두 회사 모두 자신들의 계약 방식이 여천NCC를 살리는 쪽이라고 주장하는데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DL은 앞으로 여천NCC가 공급하는 가격의 하한선을 정해두고 그 이상으로 DL과 한화가 제품을 사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계약기간도 10년 이상 장기로 맺어서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해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한화는 가격을 정해둘 게 아니라 시가로 공급단가를 정하고 또 5년 단기계약을 해야 한다고 맞섭니다. 

시장가격으로 거래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 그리고 향후 에틸렌 가격이 오르면 이를 반영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해 중순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 협상은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올해는 일단 새로운 계약이 공백상태인 건데, 이거 때문에 또 시비가 붙었다고요? 

[기자] 

일단 한화는 올해 1월부터 시장가격에 따라 여천NCC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반면 DL은 기존에 체결했던 계약내용대로 단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DL은 한화가 일방적으로 지난해보다 저렴한 가격에 에틸렌을 공급받아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380억 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합니다. 

새로운 계약이 체결이 안 됐으면 일단 기존 계약내용대로 가격을 지불하고 추후 정산을 해야 하는데 한화는 일방적으로 시장가격으로 받고 있다는 겁니다. 

또 이런 사실을 합작회사 파트너인 DL과 협의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한화는 공급주체인 여천NCC와 협의한 사항이며 시장가격에 거래하는 게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앵커] 

두 회사가 맞붙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기자] 

지난 2007년 11월 고소까지 입에 올리며 큰 갈등을 벌인 바 있습니다. 

이준용 DL 명예회장이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 측 이신효 부사장이 대림산업 경영진 무능을 언급하며 명예를 훼손시켰다"라고 발언했습니다. 

당시 이 부사장의 발언이 언론보도를 통해 나가자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겁니다. 

이 명예회장은 당시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원준 당시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도 함께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정기 인사에 불만을 품은 여천NCC 대림 측 직원 60여 명이 이 부사장 집무실에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고요. 

이 부사장이 이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갈등도 그간 25년간 해묵은 감정이 업황 부진과 맞물려 또다시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합작회사의 한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재차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봐야겠네요? 

[기자] 

두 거대기업의 합작은 손발만 잘 맞는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한계도 뚜렷합니다. 

지분도, 이사회도 양쪽이 절반씩 가져갔으니 한쪽이 주도해서 경영상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처럼 당장 자금 수혈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서로 협의하느라 결정이 지체될 여지가 큰 겁니다. 

이런 한계로 한때 기업들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빅딜로 평가받았던 여천NCC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 전락하게 됐습니다. 

[앵커] 

류정현 기자, 잘 들었습니다.

ⓒ SBS Medianet & SBSi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류정현다른기사
서울 주택공급 빨간불…서리풀은 주민반발, 용산에선 신경전
에어프레미아, 美 워싱턴DC 내년 4월부터 취항…주 4회 운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