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대승적 결단'의 공교로운 타이밍 [취재여담]
SBS Biz 안지혜
입력2025.07.07 17:01
수정2025.07.07 18:34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정부의 해킹 사태 관련 최종 조사 결과가 발표된 4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해킹 사태 관련 입장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사상 초유의 사이버 침해 사고를 낸 SK텔레콤이 지난 4일 위약금 면제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SKT 해킹 사고 최종 브리핑을 통해 "회사에 귀책이 있다.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지 불과 2시간 반 만입니다.
앞서 유영상 SKT 대표는 과기정통부 유권해석 결과 이후 이사회와 신뢰회복위원회 등을 통해 위약금 면제 여부 결정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자체 추산으로 7조원의 손해가 예상되는, 회사의 존립이 달린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말이었지만, 보다 솔직하게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난색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SKT의 판단은 신속했습니다. 과기부의 발표(오후 2시)가 나온지 채 3시간도 안돼 기자회견(오후 4시반)을 열고 전격 수용을 발표했습니다. SKT가 당일 오전 과기부로부터 유권해석 결과를 미리 통지받았다는 걸 고려해도, 불과 한나절 만에 긴급이사회까지 마치고 위약금 면제란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겁니다.
신속한 결정 배경엔 대통령과 주무부처 압박이 있었다는게 주된 평가입니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계약 해지 과정에서 회사의 귀책 사유로 피해자들이 손해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위약금 면제를 사실상 압박했고, 당일 주무부처인 과기부는 "위약금 면제를 안하면 시정명령 등 후속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며 회사를 직접적으로 압박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에 큰 손해가 갈 수 있는 결정이라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대승적 결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증권가에서는 SKT 목표주가 하향 조정이 줄을 이었습니다. 위약금 면제를 권고한 정부 조치가 예상보다 강해 올해 남은 기간 감익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타이밍상으로는 곧 발효를 앞둔 상법개정안 역시 SKT 이사회의 결심에 힘을 실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최근 국회 본회의 통과한 상법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법이 시행되면 이사회는 경영상 중요한 판단 내릴 때 회사 뿐 아니라 일반 주주의 이익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배임죄로 고소·고발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진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국회를 통과한 법은 15일 이내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공포해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은 아직 국무회의 안건으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강화된 이사의 충실의무가 발효되기 전이라 SKT 이사회가 배임죄 등 가능성에서도 그나마 자유로운 판단이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유 대표는 당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위약금 면제가 끝까지 논쟁적이고 급작스러운 결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는데("긴급 이사회 격론 끝에, 격론 끝에 위약금 문제를 수용하는 것.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안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게 회사와 주주 이익 모두에 부합한다고 생각해 결론내게 됐다"), 상법개정안 발효 후 이사회가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일부 주주들의 반대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정부가 밀고, (곧 강화될)주주충실의무 상법개정안이 끄는 가운데 SKT는 이동통신사가 개인정보 유출 이슈로 고객 위약금을 면제한 첫 사례가 됐습니다. 뭐가 진짜 계기가 됐든 SKT의 이번 고객 신뢰회복 약속이 또다른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재기의 발판이 되기를 주주와 주주인 고객과, 주주 아닌 고객 모두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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