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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청구서' 재계는 떨고 있다

SBS Biz 정동진
입력2025.06.12 16:46
수정2025.06.12 17:18

[앵커] 

이재명 정부가 '상생경제'를 앞세워 빚탕감과 물가안정, 공정거래 정책을 잇달아 꺼내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산업계는, 상생을 앞세운 정부 정책이 재계에 얼마짜리 청구서로 날아올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동진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금융업계에서는 일단 이 대통령의 '빚탕감'에 주목하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소상공인의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이 대통령의 공약은 단순한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가장 앞세웠던 핵심 약속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 대통령 (1차 TV 대선토론 중) : 국민들이 빚이 늘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 근본적으로 채무 조정 정도를 넘어서서 일정 정도는 정책 자금 대출 부분은 상당 정도 탕감을 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냐.] 

[앵커] 

소상공인 자영업자 채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이렇게까지 빚탕감을 얘기하는 거죠? 

[기자] 

정부는 코로나19 피해 업종에 대해 2020년 3월 31일 이전 대출들의 만기를 연장해 왔는데요. 

지난 2022년 9월, 금융위는 최장 3년을 유예해 주겠다고 밝혔고, 그때 연장된 채무액 가운데 약 47조 원이 오는 9월에 만기가 도래할 예정입니다. 

당정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상환을 못할 것으로 우려하는 겁니다. 

이미 대출이 90일 이상 연체돼 신용정보원에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2년 만에 5만 명 넘게 증가했고요. 

은행권의 올 1분기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0.71%로, 2021년 1분기(0.21%) 대비 3배 넘게 뛰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누구의 빚을 얼마나 탕감해 줄지, 이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이 대통령의 후보시절 배드뱅크 공약을 보면, 일정 요건을 갖춘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채권소각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나와있는데요. 

코로나 관련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가 대상이 될 전망입니다. 

다만, 채무조정 대상 빚은 코로나 대출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앵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기자] 

이미 금융감독원은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코로나 대출은 물론 소호 신용대출 등 전체 개인대출까지 부채 규모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책대출 부족분을 개인대출로 메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빚탕감 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다만 대선 기간 동안 민주당 선대위 산하 위원회에서 제안된 빚탕감 방안을 보면요. 

원리금을 성실히 상환해 온 사람들에게는 상환하고 남은 코로나 대출원금의 절반을 탕감해 주고요. 

나머지 차주들은 상환 기간을 10년 유예해 주고 그동안의 이자를 탕감해 주는 안이 제안됐습니다. 

[앵커] 

그럼 어떤 방식으로 빚을 없애주게 되는 건가요? 

[기자] 

쉽게 말하면 정부가 캠코 산하에 '빚 정리 전문 기관'을 따로 만들어서, 연체된 채권을 사들이고, 대신 정리해 주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는 최근 비영리법인도 개인금융채무자의 권익 보호와 재기 지원을 위해서라면 '개인금융채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했는데요. 

금융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배드뱅크 설치의 초석 다지기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금융위는 새 정부 첫 추경안에 배드뱅크 설립 자금을 넣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는데요. 

기재부 관계자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된다면, 여기에 빚탕감 등 채무조정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들어보면 은행들이 뭐가 부담이 된다는 건가요? 

[기자] 

은행권이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배드뱅크 설립에 필요한 재원을 정부만이 아닌 은행들도 함께 출자하자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금융사 출연금을 활용하는 서민금융안정기금을 신설해 정책서민금융을 늘리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또 하나는 팬데믹 당시 신용대출로 사업을 이어온 자영업자들의 개인대출까지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채무조정 대상이 넓어질수록 필요한 재원도 커지는데, 배드뱅크만으로 감당이 어려울 경우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원금이나 이자를 깎아주는 역할까지 떠안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행법상 3천만 원 미만의 연체 채무자는 금융사에 직접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앵커] 

정치권의 상생금융 목소리에 금융권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기자] 

일단, 복수의 여당 관계자는 "금융업권에 부담을 강제로 지울 수 없다"라며 "협의할 사항"이라는 입장입니다만 정작 업계는 사실상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금융권 관계자 : 참여 압박 느낄 수밖에 없죠. 채무 조정이 반복되면, 고의적으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을 텐데. 건전성과 수익성을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 금융사들이 보증부 대출 심사도 강화해서 대출받기가 어려워질 수도….] 

반복된 채무조정이 불러일으킬 도덕적 해이가 금융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까지 우려하는 건데요.

아울러 전문가들도 채무조정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김정식 /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거래행태가 디지털화되면서 전부 다 온라인으로 지금 바뀌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프라인에서는 앞으로도 거래가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래서 그(부실화) 원인을 해결해 주는 노력을 병행해야 된다.] 

[김미루 / KDI 연구위원 : 임금 근로자 시장으로 돌이킬 수 있는 재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고요. 중장기적으로는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 등으로 기대수명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애 주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이 상승하지 못하는 현상을 개선해 고령층이 불가피하게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배드뱅크는 제한적으로만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압박을 느끼는 게 은행들만이 아닐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던데 라면 한 개에 2000원 하는 게 진짜냐"며 물가 대책을 주문하자 식품업계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들어보시죠. 

[식품업계 관계자 :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것처럼 당연히 들리기는 하고요. 작년부터 원자재 가격 인상이 있었고, 환율 부담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저희도 어쨌든 그걸 감내해 왔던 상황이고. (최근 가격 인상도) 최소한의 품목에 대해서만 인상을 진행한 거거든요. 이런 업계의 입장도 좀….] 

[앵커] 

식품업계야 늘 앓는 소리를 하죠. 

실제로 어떤가요? 

[기자]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삼양식품을 제외하면, 농심과 오뚜기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감소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격 통제만으로는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비용 부담이 커진 식품업계의 공급 여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정연승 /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 "유통산업의 지금 최근 경기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국내 시장이 지금 시장 규모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 진출 또 해외 판매를 위한 여러 가지 지원책이 필요하고요. 유통산업의 구조 효율화·선진화, 그리고 또 유통산업의 경기 활성화 이런 복합적인 측면을 보면서 정부 정책이 만들어져야 된다….] 

[앵커] 

배달업계도 긴장하고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에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넣은 만큼, 관련 입법에 속도가 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울러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원회의 인력 충원 필요성을 언급했는데요. 

지난해 공정위는 라면 기업들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한 바 있고, 현재는 배민과 쿠팡이츠 등 배달플랫폼들의 '갑질' 의혹 등 다수의 플랫폼 업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상생경제와 공정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위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과거에도 정권초기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면서 투자 위축, 고용 감소 같은 부작용이 반복됐는데요. 

실용적 시장주의를 내건 이재명 정부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정책 효과와 시장 안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앵커] 

정동진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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