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전 재산 21억 보이스피싱 당한 70대…은행 뭐했나

SBS Biz 오수영
입력2024.12.17 17:49
수정2024.12.17 18:42

[앵커] 

따로 사는 고령의 부모님이 자녀와 손주의 안전을 위협받는 보이스피싱범에 금전 피해를 당하는 일 적지 않습니다. 

눈뜨고 21억 원을 날린 사례가 나왔는데, 은행의 안전장치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오수영 기자입니다. 

[기자] 

최근 집을 팔고 전재산 23억 원을 3개 예금상품에 넣어둔 73세 유 모 씨에게 '금융감독원 이훈', '대검찰청 박주남 검사'에게 잇달아 메시지가 옵니다. 

범죄 자금이 아닌 걸 증명하려면 자신들에게 송금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자녀에게 알리면 위험해진다고 말합니다. 

모두 보이스피싱범들이 꾸며낸 이야기였습니다. 

[피해자 유 모 씨 자녀 : 당신이 감옥에 가게 되고 빨간 줄이 그이면 자식들의 미래에 다 영향이 있다", "이 집안에서 공무원을 할 수 없다" 이런 협박을 받으셨고요.] 

유 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5일에 걸쳐 회당 9500만 원씩 23번에 나눠 총 21억 원을 보냈습니다. 

귀신에 씐 듯 이체하는 동안 은행 안전장치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늘 다니던 은행 지점 VIP실에서 3개 정기예금을 중도해지할 때도, 고령의 소비자가 갑자기 일회용 비밀번호, OTP를 만들 때도 은행 직원은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뱅킹 이용실적이 전무했던 유 씨 계좌에서 회당 1억씩 수십 차례 돈이 빠져나가는데도 은행 조치는 부재중전화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올해부터 보이스피싱 사고에 대해 은행이 책임을 분담하는 제도가 시작됐지만 유 씨와 같은 경우는 구제가 안 됩니다. 

고객이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거나 본인 동의 하에 거래를 진행한 경우, 은행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이윤호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디지털 거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보호해 주려면 은행원에게는 의무와 권리를, 경찰에게는 권한을 주자는 얘기죠. 지금은 권리도 의무도 없단 말이에요. 권리 없이 (출금 정지)했다가는 오히려 죄가 되고, 의무가 없는데 굳이 신경 써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는 것이고….] 

이런 허점을 악용해 보이스피싱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지만, 은행의 매뉴얼은 여전히 방문 고객의 고액 인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비대면으로 자발적 이체가 이루어진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SBS Biz 오수영입니다.

ⓒ SBS Medianet & SBS I&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오수영다른기사
전 재산 21억 보이스피싱 당한 70대…은행 뭐했나
대통령 시간 멈추자…금융기관장 인사도 '시계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