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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 '어디까지' 막걸리로 보십니까? 영토 확장, 찬반 '팽팽'

SBS Biz 안지혜
입력2024.09.13 09:36
수정2024.09.16 20:54

딸기 막걸리부터 허니버터 막걸리, 얼그레이 막걸리까지… 평소 이색 전통주 '애주가'라 자부하는 분이라도 잘 모르시는 사실이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목울대를 씰룩이며 시원하게 한 잔 비운 그 막걸리, 진짜 '막걸리'일까요?

난데없이 '막걸리 음모론'을 띄우는 이유는 주세법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행 주세법은 향료나 색소를 사용한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합니다. 실제 딸기를 넣었다면 딸기 막걸리가 맞지만 딸기맛을 내는 향료나 색소를 넣었다면 막걸리나 탁주란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막걸리로 알고 사는 제품이라도, 라벨을 자세히 보면 '00주'로 표기하거나 재료를 연상케하는 단어를 썼을 뿐 정확히 '막걸리'란 명칭은 피해간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밤바밤 ▲톡쏘는알밤동동 ▲얼그레이주 등이 대표적입니다. 전부 기타주류, 즉 유사 막걸리입니다. 어제 비운 막걸리도 진짜 막걸리였거나, 유사 막걸리였던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막걸리냐 기타주류냐의 구분이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믿었던' 딸기주가 사실은 막걸리가 아니고 기타주류였다고 해서 술맛이 변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기타주류는 막걸리보다 세금이 7배 정도 비쌉니다. '딸기주' 사업자가 '딸기 막걸리' 사업자보다 세금면에서 더 불리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자 판매가에도 반영됩니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가 막걸리에도 향료와 색소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전통주 업계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딸기주는 '유사' 막걸리 꼬리표를 떼고 당당하게 '막걸리' 라벨을 붙일 수 있을까요?


"막걸리에도 색소·향료 허하라"…세법 개정안이 '불씨'


집안 대대로 어르신들이 즐겨드시던 전통 막걸리는 쌀과 누룩 물로만 빚었습니다. 현재는 ▲녹말이 포함된 재료, 국(누룩), 물 ▲당분, 과일·채소류 ▲첨가제(아스파탐 등)까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향료나 색소는 막걸리의 재료로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재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은 이 룰을 완화하는 내용의 주세법 시행령을 담았습니다.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제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향료와 색소를 넣어도 막걸리로 인정한다는 내용입니다. 딸기주의 주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막걸리는 한 병 당(750ml 기준) 33원의 세금을 내지만, 기타주류로 분류된 유사 막걸리는 이보다 7배 가량 높은 246원의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2024년 세법개정안 중 일부 발췌]


문제는 지난 7월 말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8월 초 국회에 제출된 이 개정안을 두고 전통주 업계에서 뒤늦게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재부는 전통주 업계의 '숙원 사업'이라며 개정안에 담았다는 설명인데, 정작 당사자인 전통주 업계가 반대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반대론자 "지역 특산주 망하고 전통주 시장 붕괴"


정확히 말하면 전통주 업계에서도 본 개정안으로 이득을 보는 쪽과 손해를 입는 쪽으로 찬반이 갈립니다. 이득을 보는 쪽이 본 개정안을 추진했고, 손해를 보는 쪽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지만 "대다수는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최근 '막걸리향료색소첨가반대위원회'를 발족한 류인수 한국술산업연구소장은 "개정안은 한국막걸리협회를 중심으로 일부 대형 막걸리 생산업체들이 몇 년 전부터 주장했지만 전통주 산업 붕괴 우려가 있어 그동안 통과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면서, "올 초 규제개혁추진단이 일부의 의견을 수렴 후 개정안에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대다수 소규모 양조장들은 사후에 소식을 접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류 소장은 최근 110개 지역특산주 및 소규모 양조장을 대표해 반대 청원서를 정부부처에 제출하는 등 개정 반대 목소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개정안 시행시 지역의 특색 있는 술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류 소장은 "지역 특산주 업체들의 가장 큰 차별성은 원료의 특색인데, 과일 등 천연재료 대신 향료와 색소를 첨가하는 막걸리가 늘어나면 지역농산물을 사용하는 양조장들이 생존을 위협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진짜 막걸리'가 된다면 굳이 값비싼 천연 원료를 사용하는 막걸리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품질 낮은 술이 늘어 전통주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 막걸리 매출액이 5천억원이 넘는데 이중 55% 이상의 양조장이 반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면서 "개정안 시행을 1~2년 미루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막걸리에도 사케처럼 등급제를 도입하는 등 보완책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찬성론자 "제품 다양화로 막걸리 산업 더 커질 것" 
찬성론자들은 산업 진흥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이번 세법 개정안 개정을 건의한 한국막걸리협회 경기호 회장은 경기 침체로 매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규모 양조장들이 향과 색소를 첨가한 다양한 제품을 기타주류가 아닌 막걸리 브랜드로 출시할 수 있게 되면 판매 기회가 더 확대되고 주종 경쟁력도 높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경 회장은 "현재 기타주류와 막걸리 면허는 중복 취득이 안 돼 막걸리면 막걸리, 기타주류면 기타주류 한쪽 면허만 활용이 가능하다"면서 "지역 막걸리 양조장들은 기타주류를 만들어 팔고 싶어도 못파는 실정인데 막걸리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 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막걸리와 비교해도기타주류 수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만큼 매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주종 간 형평성도 언급했습니다. 와인이나 맥주 등 다른 주류는 이미 향료·색소를 허용하고 있어 막걸리만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뜻입니다. 상대적으로 기타주류 제품 비중이 높은 대형 양조장들이 이번 개정안으로 세금을 낮춰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경 회장은 "개정안이 발표되는 바로 그날 유통사들에서 그럼 앞으로 제품가가 얼마가 내려가느냐고 득달같이 연락이 왔다"면서 "세금이 낮아지는 만큼 제품가도 낮아지는 건 숙명이고 그만큼 소비자 혜택이 넓어지는건데 이번에 유예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도 참전…난감한 기재부 "의견 더 수렴하겠다"
이렇듯 논란이 커지자 국회도 참전했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에서 본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임 의원은 "개정안 통과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지역 특산주·탁주 업체에게 큰 피해가 갈 것"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청했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전통주 업계에서 의견이 건의돼 수용한 것인데, 반대하는 쪽의 주장도 있는 걸 확인했다"면서 "법원 판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 및 업계의 의견을 다시 한 번 경청해서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기재부 소관과 관계자 역시 "발표된 개정안과 무조건 똑같이 간다는 건 아니고 농림부나 국세청과도 협의해서 정할 방침이다. 연말 연초 입법예고 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더 수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세수 감소 우려에 대해서는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위기입니다. 그는 "산업진흥 목적이 있는 만큼 단순히 걷는 세금이 줄어든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고, 산업진흥으로 전반적인 막걸리 매출이 늘면 세수도 더 걷힐 수 있는 만큼 단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전통 훼손인지 새 시대에 맞는 규제 완화인지, 본격적인 논의는 오히려 세법 개정안 발표 후 본격화되는 모습입니다. 시행이냐 유예냐 보완이냐. 연말까지 남은 서너달이 막걸리 영토의 크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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