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담] '밸류업' 역주행하는 기업들…주주는 여전히 '뒷전'
SBS Biz 조슬기
입력2024.07.16 17:45
수정2024.07.17 10:47
"매출 10조짜리 회사를 상폐(상장폐지)시키고 매출 500억짜리 회사로 편입시킨다는 거야? 이러니 코스피가 대접을 못 받지. 쯔쯔쯔…"
"와 진짜 찐 종목이었는데 한 순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렸네. 이제 두산밥캣은 더 이상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 듯…외국인이 그냥 패대기 치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두산밥캣 종목 토론방에 들어가면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 움직임과 관련해 성난 주주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조 단위의 현금을 창출하는 중장비 분야 선두 기업 두산밥캣을 대체 왜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내용입니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100% 완전자회사로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이번 분할합병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상장사로서 지위를 유지하지만 두산밥캣은 상장폐지됩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는 분할에 따른 일부 에너빌리티 지분 감소와 함께 두산로보틱스 신주를 배정받고 상장폐지되는 두산밥캣 주주들은 밥캣 1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교환받습니다.
두산은 이번 분할합병을 통해 두산에너빌리티는 SMR(차세대원전) 및 에너지사업에 집중할 수 있고,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의 네트워크를 통해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성장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번 사업 재편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상장폐지되는 두산밥캣 소액 주주들의 반발이 유독 거셉니다.
그룹 입장에서는 알짜 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가 가져가게 함으로써 첨단 제조사로 변신을 꾀할 수 있겠지만, 꾸준한 실적과 배당을 보고 투자한 두산밥캣 주주들 입장에서는 분할합병에 따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영업이익이 1조원이 넘는 회사 주식 1주를 설립 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회사주식 0.6주로 바꿔야하는 만큼, 합병에 찬성하는 대가로 받는 주식의 가치가 과연 적정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주주들이 적지 않습니다.
증권가는 그룹의 캐시카우나 다름없는 밥캣을 로보틱스에 넘김으로써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명확해졌다고 입을 모읍니다.
익명을 요구한 A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두산로보틱스의 지분을 희석하지 않으면서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도 있고,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서도 지배력은 전보다 강화되는 일석이조의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두산그룹의 이번 사업 재편안에 대해 상장사 합병 비율 산정 시 기업가치를 순자산이 아닌 시가로 정하도록 한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거버넌스포럼은 "두산그룹은 밸류업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이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강도높게 비판하며 주주들이 철저히 소외된 오로지 기업만을 위한 밸류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주주들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비단 두산그룹에 그치지 않고 SK, 효성 등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SK E&S 합병을 통해, 효성화학은 알짜 사업부인 특수가스 부문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 또한 주주들 입장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결정이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정책을 확인한 뒤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SK E&S가 비상장사인 만큼 합병비율 산정 방식에 따라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효성화학 역시 무배당 기조 속 이뤄지는 알짜 사업부 매각 움직임이라 기업가치 훼손 우려 악재로 투자자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당초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밸류업 행보와는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되려 역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경쟁력 강화와 주주가치 증진이 함께 이뤄지지 않은 채 주주의 이익은 외면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주주의 이익도 중요시하는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없다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는 일반주주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깨지기 어러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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