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아들아, 사사로이 물려 줄 수 없구나'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별세

SBS Biz 송태희
입력2024.06.13 16:54
수정2024.06.13 17:34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의 2014년 기부 약정식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15억원을 기부한 정문술(鄭文述) 전 미래산업 회장이 12일 오후 9시30분께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KAIST가 전했습니다. 향년 86세.

'벤처 1세대' '나스닥 상장1호 CEO' 고인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그의 굴곡진 삶 만큼이나 많았습니다. 그중에도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있던 것은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는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는 515억원을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1938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성고를 졸업했습니다. 군 복무 중 5·16을 맞았고, 혁명군 인사·총무 담당 실무 멤버로 일하다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광대 종교철학과)을 다녔습니다. 1980년 5월 중정의 기조실 기획조정과장으로 있다가 실세로 바뀐 보안사에 의해 해직됐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다 퇴직금을 사기당했는가 하면 어렵사리 설립한 풍전기공이란 금형업체도 대기업의 견제로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1983년 벤처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면서 정 전 회장은 전기를 맞습니다. 일본의 퇴역 엔지니어를 영입, 반도체 검사장비를 국산화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매출액을 뛰어넘는 연구개발비를 과감하게 투자해 1999년 선진국이 독점하던 전자제품 제조 기초장비인 'SMD 마운터'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1999년 11월에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나스닥에 상장해 '벤처 1세대'로 불렸습니다. 2001년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고인은 자녀들을 회사(미래산업)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저서 '아름다운 경영: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2004)에서 "주식회사란 사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어서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길 권리라는 게 사장에게 있을 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역사가 가르치듯이 '세습 권력'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적었습니다.

또 은퇴를 선언하기 직전에 두 아들을 불러서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가 없구나"라고 양해를 구하자 두 아들이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라고 말하더라고 덧붙였습니다.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을 보태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습니다. 카이스트 정문술 빌딩과 부인의 이름을 붙인 양분순 빌딩도 지었습니다.

고인은 2014년 1월10일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라고 밝혔습니다.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 2009∼201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2014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됐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습니다.

유족은 양분순씨와 사이에 2남3녀가 있습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입니다.
 

ⓒ SBS Medianet & SBSi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송태희다른기사
성남시, 6일부터 10%할인 지역상품권 5천억원 발행
태국, 탁신의 딸 패통탄 총리, 5천900억원 재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