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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 "화해하자" 한미약품 형제, 칼바람은 없다?

SBS Biz 정광윤
입력2024.03.29 12:38
수정2024.03.29 17:28


한 편의 반전드라마였던 한미약품그룹 모녀와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모녀 대세론을 뒤집고 임종윤·임종훈 형제가 승리했습니다.

승리한 형제들은 '칼바람'을 예고하는 대신 "화해하자"고 말해 한 번 더 반전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승자의 관용'에도 '이곳'만큼은 예외가 될 걸로 보입니다.

칼바람, 진짜 없다?
형제는 주총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와 누이, 임직원들에게 "이제 화합하자", "다 같이 합치자"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본인 측근 중심의 인사는 불가피 하겠지만, 앞서 임종윤 본인이 밀려났던 방식처럼 기존 임기가 만료된 뒤 재선임 하지 않는 등으로 잡음을 최대한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형제가 분쟁을 조장한 세력으로 지목한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입니다.

장남 측은 "2년 전 라데팡스 추천 인물이 지주사 사외이사로 들어오며 이사회서 밀려났다"며 "모녀를 부추겨 갈등을 키우고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실제로 이번 분쟁의 핵심인 OCI와 통합을 주선·추진한 것도 라데팡스고,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는 임주현 부회장과 함께 OCI 지주사 이사로도 내정됐었습니다.

라데팡스는 불과 일주일 전, 장남 발언에 '명예훼손'이라며 고소도 했습니다.

장남 입장에선 화해할 수도, 화해할 이유도 없는 대상인 셈입니다.

따라서 사외이사를 비롯해 라데팡스와 직접 연결된 인물들을 최우선으로 솎아내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대결 예상과 결과, 왜 달랐을까?
주총 전,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국민연금 등 '캐스팅보트'들의 편 가르기가 끝난 뒤, 예상치는 모녀 지분율이 약 43%, 형제 40.5%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 모녀(임주현 부회장) 42.1%, 형제(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46%로 뒤집혔습니다.

예상치엔 의결권 없는 자사주 등이 포함된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주총 전후 숫자를 비교해 보면 결론이 명확합니다.

모녀와, 모녀가 영향력을 가진 공익재단·사우회, 그리고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일반 투자자가 모녀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형제 측 '비장의 한 수'는 창업주 직계를 제외한 친인척들입니다.

고 임성기 창업회장이 인적분할로 지주사 체제 만들 때 지분을 나눠줬는데 모으면 3% 정도 됩니다.

형제 측은 이 밖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액주주를 6% 정도로 봤는데, 결과를 보면 이 중 상당수가 형제 쪽 손을 들어준 걸로 분석됩니다.

신동국·친인척까지, 왜 형제 택했나?
한미약품과 OCI그룹은 '동등한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최상위 통합지주사 OCI홀딩스 지분을 갖게 되는 건 딸 임주현 부회장뿐입니다.

나머지 한미사이언스 주주들은 '중간지주사'라곤 하지만, 사실상 '계열사' 주주로 남게 됩니다.

당장 지분 12%를 쥔 개인 최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회장은 지분이 희석되는 건 물론이고 지주사의 경영권 프리미엄도 상실하게 됩니다.

친인척 입장에서도 주가가 통합지주사 즉, OCI에 좌지우지될 우려가 생깁니다.

그룹의 '머리'냐, '팔다리'냐는 큰 차이입니다. 대주주 필요에 따라 계열사는 지주사보다 쉽게 매각·합병·분할될 수 있습니다.

장남도 주총 전 간담회에서 한미약품 순이익 증가를 위한 방안으로 부분 매각 등을 언급했습니다.

비록 임주현 부회장이 소액주주들에게 자사주 소각과 배당을 약속했고 진심이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경영의 어려움· OCI의 반대 등을 명분으로 나중에 약속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최근 활발한 '기업 밸류업' 논의에서 주주환원 약속 이행이 강조되는 건, 안 지켜진 선례가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개미' 움직인 요인은?
주총 전 장남은 한미약품 경영목표로 '1조 투자 유치', '시총 50조~200조 기업', '100개 바이오 의약품 생산' 등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목표들을 언급했습니다.

상속세 재원 등에 대한 해결책도 모녀보다 구체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모녀 쪽 주장이 논리정연했습니다.

"OCI 통합으로 상속세 털어 오버행(잠재적 대량매도물량) 우려 없애고, 안정적 투자재원을 마련한다"는 겁니다.

국민연금이 "장기적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한다"고 평가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개미들은 '장기적 주주가치'를 '기약 없는 주주가치'라고 읽습니다. 지금 오르는 주가 혹은 당장 꽂히는 배당이 아니면 말 잔치일 뿐입니다.

현 주가가 정말 상속세 우려 때문에 낮은 건지, 

OCI가 안정적 수익을 거둔다지만 과연 언제까지 한미의 안정적 파트너 혹은 돈줄이 돼줄지,

상황이 나빠지면 OCI 주주로 갈아탄 임주현 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는 뒤통수 맞지 않을지, 이런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패배한 모녀, 반격 가능성은?
형제 쪽은 주총 표대결에서 지더라도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주총 무효 가처분부터 신주발행금지 본안소송 등 법정 대응과 임시주총 2차 표대결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동국 회장과의 동맹 덕에 지분율 40%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은 장기전의 발판이었습니다.

반면 모녀는 그간 현 경영진으로 수성하는 입장에서, 약 8%의 그룹 공익재단 지분을 동원해 맞서 왔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이사회를 과반으로 장악했으니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OCI 통합이라는 대의명분도 상실해, 지분 7.6% 국민연금이 모녀 편을 들어준 이유가 사라진 셈입니다.

설령 다시 표대결을 하더라도 모녀가 이전만큼 표를 다시 모으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따라서 한미약품그룹은 지금까지처럼 공개적인 갈등이 이어지기보다 어떻게든 내부적으로 봉합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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