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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나면 끝?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위험하다

SBS Biz 오서영
입력2024.02.06 17:45
수정2024.02.06 20:19

홍콩 ELS 사태로 불안한 와중에 최근 시중은행에서 판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이 처음으로 판매 중단됐습니다. 맡겨만 놓으면 알아서 관리해 준다는 디폴트 옵션이 리스크 관리는 이름처럼 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상품을 판 건 은행이지만 그 안의 펀드는 운용사가 굴리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은행은 펀드 탓을, 펀드는 시장 탓을 해도 되는 구조라 책임은 결국 또 소비자 몫입니다. 오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판매가 중단된 상품은 한 시중은행에서 판 중위험 디폴트옵션입니다. 

이 상품을 구성하는 펀드 중 하나의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고위험' 상품이 됐는데 이 상품은 애초에 0.1점 차이로 간신히 중위험 승인을 받았습니다. 

가입자 2700명은 졸지에 고위험 상품에 내 퇴직금을 맡긴 꼴이 됐습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시행 1년간 대여섯 건의 상품이 판매가 중단됐는데 모두 위험등급이 변경된 이유였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은행 등 판매사들이 수익률 경쟁을 하느라 중위험 상품에도 고위험 펀드를 많이 담았는데 위험도 경계에 있는 펀드는 지금처럼 등급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등급이 바뀌기 전까지 고객은 알 길이 없습니다. 

[송우진 / 서울 중구 : 그냥 은행에서 권해서 해둬야 되겠다. (리스크 관리에) 은행이 그렇게 적극적이진 않은 것 같다. 별로 연락 없고 잘 들어오고 있구나 그렇게 느끼는 기분.] 

[장선향 / 대구 수성구 : 좀 부담이 많이 가지 않을까요. 은행은 직원하고 면담해서 하는 거니까 믿음이 갔고요] 

더 큰 문제는 위험도 재조정 주기가 1년으로 너무 길다는 것. 

펀드 운용사가 결산일에 맞춰 알려주면 그때야 판매사 은행이 알게 되는 구조입니다. 

[금융권 관계자 :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상 구성돼서 판매된 펀드에 대한 운용은 운용사에서 하고 있고, 은행은 판매사이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변동성 문제들은 운용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운용사는 운용사대로 수익률이 우선이다 보니 위험도 관리는 뒷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시점에선 부여받은 위험등급이 1년간은 유지되는 구조라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고스란히 고객 몫입니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 12조 원이 쌓였고 작년 수익률 10%가 넘었다고 얼마 전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단 말이죠. 그런데 정작 리스크 관리는 방치되고 있던 거죠? 
판매사는 공격적으로 상품을 구성하고 이 때문에 상품 위험 등급이 바뀌면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가 또다시 당국의 재승인을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당국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만든 제도인 만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중위험 상품이 고위험 상품이 된다는 건 그만큼 손실 위험이 커진다는 뜻인데요. 

더 큰 문제는 은행 등 판매사는 상품을 팔고 나서 위험 관리에 대한 책임은 운용사에 떠넘기며 나 몰라라 하는 구조인 겁니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도입되다 보니 리스크 관리엔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죠? 
판매사에서 등급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도록 주기적인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는 금융당국과 고용부 모두 공감합니다. 

금감원은 제도 시행 초기라 보완할 부분이 있다는 입장으로 상품을 승인하는 고용부에서 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해 협의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가요? 
우선은 각 위험등급 경계에 걸치도록 상품 구성하는 건 지양하도록 지도할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또 위험도를 판단할 때도 단순히 점수 하나로 등급을 분류하는 심사 기준을 손보는 안도 논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 상품 승인 이후에 위험도 관리의 주체와 방법에 대해선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번 홍콩 ELS 사태에서도 봤지만 수익률보다 중요한 게 내 돈 지키는 거거든요. 실효성 있는 대책 없을까요? 
판매사가 위험 관리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옵니다. 



[서지용 /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 (은행이) 주기적으로 체크해야죠. 리스크 관리가 돼야 하니까. 고객들한테는 최소한 월간 리포트로 보고가 돼야 할 것 같고 손실 안 나게 관리돼야. 고객들한테 수익률만 고지해 주는 것 같은데 요즘에 홍콩 ELS 사건 때문에 고수익 상품에 대한 위험이 부각되고 있잖아요.] 
 
 

[이정환 /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 퇴직연금, 자산운용사들은 계속 분기별로 보고서 내거든요. 은행들이 그런 거 모아서 자기네들이 평가해 주면 되죠. 그런 건 가능할 거다. 고지라든지 변화라든지 가이드를 해주는 게 중요하다.] 

소비자는 사실상 은행 등 판매사를 믿고 상품에 가입한다는 점에서 상품 관리를 운용사에만 맡길 게 아니라 판매사가 주기적으로 위험도를 체크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서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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