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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최신 약 많은데…한국엔 없다 [의술, 이게 최신]

SBS Biz 이광호
입력2023.11.10 15:23
수정2023.11.11 10:02

최근 파킨슨병을 둘러싸고 마도파의 품절이 큰 이슈가 됐습니다. 오랫동안 먹어 왔던 약이 갑자기 끊긴 환자들이 불안에 떨었죠. 복제약이 있지만 믿지 못하는 환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마도파에 주로 의지해야 하는 환자들의 선택지 부족 문제 그 차제입니다. 외국에선 이미 허가돼 쓰이는 수많은 약들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파킨슨병은 뇌 속 도파민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입니다. 흔히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 정도로 알려진 도파민은,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뇌 곳곳에 있는 도파민 중 특히 운동능력을 관장하는 도파민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족해지는 경우를 파킨슨병으로 부릅니다. 운동능력 전반에 이상이 생기면서 표정을 짓기 힘들어지고 수전증이 생기며, 점차 동작이 생각과 달리 느려지다가 결국은 몸이 굳어 거동 자체가 안 되는 상황까지 이어집니다. 

부족한 도파민 채우는 '레보도파'
도파민이 왜 없어지는지, 그리고 없어지는 도파민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알파-시누클레인'이라 불리는 단백질이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정도만 밝혀졌죠.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 '에이-베타'를 없애는 치매약이 오랜 연구 끝에 출시된 것과 달리, 파킨슨병에서 '알파-시누클레인'을 없애거나 생기지 않도록 하는 약들은 모두 아직 실험실에 있습니다. 

[고성범 /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 병의 진행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재생시키는 줄기세포 관련 치료법이나, 신경영양물질을 뇌에 심어 주는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파-시누클레인'을 서로 엉키지 않게 한다거나 너무 많이 만들지 않게 하거나, 혹은 제거하는 항체를 주거나, 몸에서 항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증상이라도 해결하려 하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대응 방안입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다면 도파민을 넣어주는 식이죠. 하지만 도파민은 뇌혈관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입니다. 때문에 도파민의 전 단계 물질을 집어넣고 뇌에서 도파민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씁니다. 이것이 '레보도파'라는 물질입니다. 파킨슨병 환자라면 가장 먼저, 또 가장 오래 접하는 약입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도파민을 흉내 낸 새로운 물질을 집어넣는 약이 있습니다.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몸속 물질과 결합해 도파민이 결합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냅니다. 도파민은 아니지만 그 효능을 낸다고 해서 '도파민 효능제'로 흔히 부릅니다. 여기에 레보도파를 장기 복용했을 때 생기는 각종 운동 부작용을 치료하는 약과 레보도파가 몸에 더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돕는 각종 보조제 등이 파킨슨병 치료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15종 중 10종이 '20세기 약'
여기서 문제는, 국내에 허가된 치료제가 하나같이 오래됐다는 겁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중복된 복제약을 제외하고 파킨슨병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허가된 약은 모두 15종입니다. 이 중 2000년 이전, 즉 20세기에 허가받은 약물은 10개에 달합니다. 2000년대 들어서 허가받은 약은 4종, 2010년 이후로는 단 1종밖에 없습니다(마도파의 복제약인 명도파는 마도파의 허가 시점인 1992년으로 계산했습니다). 세계적으로 파킨슨병의 치료법 개발이 어려워서 약이 추가되지 않은 걸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성범 /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 레보도파 제제가 작용하는 시간 자체가 한계가 있다 보니 그 시간을 길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미국 등에는 짧은 시간부터 약효가 시작돼 오랫동안 가게 하는 레보도파의 먹는 약이 있고요. 두 번째는,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져서 빠른 시간 내에 환자가 회복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천식 흡입체처럼 쓰는 약도 외국에는 있습니다. 또 도파민 효능제 중에서도 주사 형태로 오래 약효가 지속되게끔 하는 약이 있는데, 그것도 국내에 들어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약효 유지 시간 늘린 '리타리' (자료=제품 홈페이지)]

의사의 설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레보도파의 약효를 늘린 약은 '리타리'라고 부릅니다. 2015년 미국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개발사에 따르면, 전통적인 레보도파 약 '시네메트'가 1시간 반에서 2시간까지 약효를 유지할 때, 리타리는 5시간까지 작용 시간을 늘렸습니다. 흡입제는 '인브리자'라는 이름으로, 입에 기구를 물고 가루를 흡입하는 방식입니다. 개발사에 따르면 10분 만에 증상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2018년 미국에서 허가됐습니다. 
[흡입제 형태의 레보도파 '인브리자' (자료=제품 홈페이지)]

'레보도파'라는 바탕은 비슷하지만 환자의 편의성 면에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내연기관차라는 바탕은 같지만 외국에서는 자율주행 기능과 전후방 충돌 보조 장치 등 온갖 기능을 추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에 이런 약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약값 때문입니다. 만성 질환의 특성상 환자가 약값에 예민하고, 그런 만큼 건강보험을 받아야 국내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받는 과정에서 당국과 약값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건보 재정 문제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당국은 특히 이런 장기 복용 약품의 약값 협상에서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다만, 재정과 환자의 편의성 사이에서 적절한 선택을 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절개 없는 뇌수술, 파킨슨병에도 한다
파킨슨병도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2005년 국내에서 건강보험까지 적용된 정식 수술법이 있습니다. '뇌심부자극술'이라는 이름으로, 뇌 깊숙한 곳에 긴 침을 꽂아 전기를 흘려보내는 방식입니다. 일회성으로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침을 꽂은 채 일상생활을 합니다. 몸에 부착한 배터리를 통해 끊임없이 뇌를 자극합니다. 

[전상용 /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파킨슨병 환자의 뇌파를 측정해 보면 기저핵 안에 베타파라는 뇌파가 있습니다. 그 베타파가 이상하게 많이 증가돼 있고, 기저핵 전반에 걸쳐서 통일된 형태를 보이거든요. 정상적인 형태는 아닙니다. 베타파의 파형이 더 세지면 환자의 운동이 점점 느려지는 증세가 심해지고, 파킨슨병약을 먹으면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정상화되는 모습도 보이고요. 뇌심부자극술을 하면서 전기  자극을 하면 이상 베타 뇌파가 다시 줄어듭니다. 줄어든 자리에서 다시 정상 뇌파가 발생하는 방식입니다.]

지난해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와 전범석·김한준 신경과 교수, 박혜란 순천향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공동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심부자극술을 받은 81명의 5년 생존율은 95.1%였습니다. 환자가 아닌 비슷한 나이대 사람과 5년간은 비슷한 생존율을 기록한 겁니다. 이후에는 조금씩 사망 비율이 높아졌지만, 전체 환자 중 40%(33명)는 11년 이상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보행이 가능했습니다. 
[뇌심부자극술 모식도 (자료=서울대학교병원)]

다만 수술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절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몸상태를 갖춰야 합니다. 초고령 환자나 심혈관질환 등으로 항혈소판제제나 항응고제를 먹고 있는 환자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건강보험 조건도 있습니다. 5년 동안 약을 먹어 오다가 약효가 떨어진 환자, 그리고 파킨슨 증후군이 아닌 파킨슨병으로 판명난 환자 등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을 갖춰야 하다 보니, 수술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환자가 생겼습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쓸 수 있는 새로운 수술법이 지난해부터 국내에 추가됐습니다. 초음파를 이용한 수술입니다. MRI 기계에  수술 도구를 부착해, 환자 MRI를 실시간으로 찍으면서 수술을 합니다. 절개는 없고, 뇌를 통과한 초음파선 1천여개를 집속시켜 열을 발생시킵니다. 2~3㎜의 미세한 부위를 불태워 없애는 수술입니다. 의료계 용어로 '초음파 소작술'이라고 합니다. 

광범위한 증상보다는 각종 원인으로 인한 수전증(파킨슨병을 포함한), 그리고 파킨슨병 치료제 장기 복용에 따른 이상 운동 증상을 개선하는 목적의 수술만 가능합니다. 또한, 전기 자극술은 침을 빼내면 다시 뇌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지만, 이 수술은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안전하게 계산된 수술이지만, 수술 전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전상용 /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전기에 의한 심부 '자극술'(되돌릴 수 있는 수술)은 2000년 초반 시작했고, 그 이전부터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그중 하나가 '전기 소작(불태워 없앰)술'입니다. 자극술이 아니고. 뇌에다 기다란 전기 침을 넣어서 전기로 열을 발생해서 태우는 게 유행했죠. 그래서 뇌의 일부분을 소작시키면 파킨슨 증세가 좋아진다는 걸 오랫동안 알고 있었죠. 하지만 뇌에다 소작용 전기 침을 꽂는 것도 위험하고 잘못 소작 시 부작용도 있어서 전기자극술이 나오며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초음파로 뇌 일부를 소작할 수 있다고 하니, 과거의 연구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뇌심부자극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800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자극술에 쓰는 침과 배터리 등 기기 가격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도입돼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초음파 수술은 더 비쌉니다. 수술비만 1천200만~1천500만원, 입원비를 포함하면 더 비싸집니다. 

지팡이 없이 6㎞ 걸었다…'척수 자극술' 평가는
여기에 최근 독특한 연구 결과가 '네이처메디슨'에 실렸습니다. 뇌 대신 척수로 전기 자극술의 영역을 바꾼 시도입니다. 이를 통해 스위스에서 한 환자의 운동능력이 크게 회복돼, 이제는 주말마다 6㎞를 지팡이도 없이 걷고, 계단도 마음껏 오르내린다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연구가 발전하면 파킨슨병 환자의 운동 장애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척수 자극술 자체가 새로운 시도는 아니라는 게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팔이나 다리의 만성 통증을 줄이는 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지 않아 사장되는 추세로, 일부 통증클리닉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척수 손상으로 마비된 환자나 뇌졸중, 중풍 등으로 마비가 온 환자들을 대상으로는 척수 자극술이 드물게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통증 치료를 제외한 부분은 일부의 사례로, 아직 정식 치료법으로 발전하기까진 오랜 시간과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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