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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 이게 최신] 고혈압, 소금보단 채소가 중요하다

SBS Biz 이광호
입력2023.05.26 17:35
수정2023.05.28 09:37

고혈압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오래된 상식 중 하나는 '싱겁게 먹기'입니다. 나트륨(요즘은 '소듐'이라고 하죠)의 섭취량을 줄여야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상식을 깨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지원 가정의학과 교수 등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은 올해 초 나트륨 섭취량이 사망률과 큰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14만명을 대상으로 10년간의 기록을 추적관찰한 결과였습니다. 

반대로 상관이 컸던 건 칼륨이었습니다. 주로 채소와 과일에 함유된 영양소입니다. 칼륨을 많이 먹은 상위 20% 집단은 하위 20%보다 사망률이 21% 낮았습니다. 특히 심혈관계질환 사망률은 32%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료=세브란스병원]

물론 이 사실이 짜게 먹는 위험성에 대한 면죄부가 되진 않습니다. 여전히 짠 음식은 건강에 나쁩니다. 다만 칼륨을 많이 섭취하면 칼륨이 나트륨에 결합돼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나트륨을 다소 먹더라도 혈액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감소한다는 겁니다. 

무조건 저염식을 고집하기보단 오히려 풍부한 채소와 과일이 더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2~3g의 나트륨 섭취량을 유지하며 매 끼니 채소를 풍부하게 먹고 저녁에 과일을 먹는 방식의 식습관을 유지한다면 충분한 칼륨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의사 앞에서만 '두근두근'
고혈압 중에는 독특한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 진료실, 의사 앞에서 혈압만 재면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혈압이 오르는 증상입니다. 흰 가운만 보면 혈압이 오른다 하여 '백의 고혈압'이라고 부릅니다. 

[정미향 /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병원에선 160~180으로 혈압이 높은데 가정에서 측정하면 110~120밖에 안 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혹은 고혈압 환자는 맞지만 유독 병원에서 긴장돼 혈압이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은 독특하지만 비중이 적진 않습니다. 고혈압으로 진단되는 경우 중 15~20% 가량은 백의 고혈압 증세를 보입니다. 병원에서 여러 차례 연달아 혈압을 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쉽사리 혈압이 내려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에서 혈압을 재는 가정용 혈압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이것도 완전하진 않습니다. '혈압을 재는 행위' 자체가 긴장돼 혈압이 오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 증상도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혈압이 잘 조절되는 것 같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혈압이 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가면(mask) 고혈압이라고 부릅니다. 가면 고혈압 환자 역시 전체 환자의 15%가량을 차지한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쩍 혈압을 잴 수 있다면 훨씬 좋겠죠. 스마트워치를 통한 측정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정확도가 아직은 아쉽습니다. 정상 혈압은 잘 측정하면서, 정작 고혈압 환자의 혈압에서 오류가 속출했습니다. 고혈압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엔 적합했지만,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알아보는 덴 한계가 있습니다. 
 

반지나 팔찌 형태로 혈압만 재는 기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정확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환자가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결국은 가정용 혈압기를 일상적으로 쓰면서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현재로선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혹은 약국 등 곳곳에 있는 혈압 측정 기기를 틈날 때마다 써보는 것도 의사들이 권유하는 방법입니다. 

너무 많은 약…효능과 금기는
마지막으로, 환자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접할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고혈압은 약 종류가 워낙 많아 환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합니다. 널리 쓰이는 약들이 효과를 내는 방식과 부작용을 정리해봤습니다. 

큰 종류로 나눠 보면, 의사마다 다르지만 4~5개로 고혈압약을 분류합니다. 50년대에 가장 먼저 출시된 이뇨제를 시작으로 10년 정도 간격을 두고 새로운 약이 등장했습니다. 이뇨제 이후 베타차단제, 칼슘채널차단제, 레닌-안지오텐신 차단제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뇨제는 물과 함께 나트륨을 배출하는 약입니다. 나트륨은 우리 몸 속에서 수분과 결합해 피 속을 돌아다닙니다. 짜게 먹으면 붙잡힌 수분이 많아지면서 혈액이 늘어납니다. 혈압이 오르고 몸이 붓는 이유입니다. 이뇨제로 수분을 배출하면 함께 나트륨이 배출되면서 혈액량이 줄어듭니다. 

고혈압에 주로 쓰는 '사이아자이드' 계열 성분은 1~2주의 짧은 이뇨효과를 끝으로 혈압 개선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엄밀히 말해 이뇨제로는 실패했지만 혈압약으론 성공했죠. 그러나 오래 쓰면 드물게 당뇨 전단계 수준의 혈당 상승 등 혈액 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베타차단제는 심장약으로 쓰는 약입니다. 심장의 수축력을 약하게 해서 맥박을 느리게 합니다. 심장이 짜내는 혈액량이 줄어드니 혈압도 떨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혈관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약이기 때문에, 마치 우황청심원처럼 과도한 긴장을 완화시키기도 합니다. 

다만, 드물게 맥박이 너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심장 기능이나 혈액 순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고혈압 치료제로 널리 활용되는 주요 치료제는 되지 못했습니다. 

칼슘차단제는 혈관을 이완시키는 약입니다. 칼슘이온이 세포로 들어가서 혈관을 수축시키는데, 이를 차단하는 방식의 약입니다. 다만 혈관을 이완시켜 피가 편히 돌다 보니 얼굴에 홍조가 생기거나 다리에 부종이 생기는 드문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미 부종이 있거나 심부전이 있는 경우엔 잘 쓰지 않습니다. 

레닌-안지오텐신 차단제는 혈압을 높이는 결정적인 호르몬 체계를 차단하는 약입니다. 총 3가지로 이어지는 효소의 작용 과정 중 어느 부분을 차단하느냐에 따라 약의 세부 종류가 좀 달라집니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건 ARB라 불리는 방식의 약입니다. 혈압 강하에 더해 장기 보호 효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콩팥 양쪽 모두에 협착이 있는 환자는 오히려 콩팥의 기능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관련 검사가 필요합니다. 이외에는 특별한 부작용이 없고 범용성이 크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입니다. 

ARB도 국내에만 9종류의 약이 허가를 받았습니다. 근본적인 작동 방식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효능들을 바꿔서 의사들의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약마다 혈압을 떨어뜨리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약효를 보이는 시간을 빠르게 하거나 약효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식입니다. 

다만, 90년대 이후에는 고혈압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치료제가 등장하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있긴 했지만, 4가지 분류의 약들을 뛰어넘을 만한 약이 등장하진 못한 겁니다. 그래서 기존의 약 성분을 한 알의 약으로 합치는 개량신약인 복합제가 최근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박창규 / 고려대구로병원 심혈관센터 교수: 약을 한 알 쓰면 일반적인 경우에 혈압이 10mmHg 정도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반 알을 복용하면 5mmHg가 아니라 8mmHg이 떨어져요. 그런데 부작용은 거의 안 나타납니다. 반대로 약을 2배로 늘리면 효능이 2배가 되는 게 아니라 1.5배 정도만 오릅니다. 대신 부작용은 그대로 2배로 뛰고요. 그래서 요즘 저용량 약을 하나로 합치는 복합제가 많아지는 겁니다.]

어떤 약을 쓰든,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고혈압을 방치하는 게 가장 위험합니다. 거칠게 혈관을 도는 고혈압은 장기 속 혈관을 돌 때마다 조금씩 장기를 손상시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장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뜻입니다. 고혈압이 만병의 근원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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