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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치료 포기 마세요…표적항암제 찾는다 [의술, 이게 최신]

SBS Biz 이광호
입력2023.04.14 15:43
수정2023.04.15 23:10

요즘 암에는 기본적으로 3가지 치료제가 활용됩니다. 세포독성항암제, 표적항암제, 그리고 면역항암제죠. 편의상 1세대와 2세대, 3세대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암은 이런 선택지 없이 여전히 가장 오래된 세포독성항암제를 써야 하기도 합니다. 오늘(15일) 이야기할 췌장암의 생존율이 유독 낮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수십 년 동안 그 흔한 표적항암제 하나 없던 췌장암에 최근 새 표적치료제의 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항암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췌장암 단체들이 모여 '10년 내 완치율 2배' 캠페인을 열기도 했습니다. 보통 암이 완치됐다고 보는 5년 후 생존율 지표 기준으로 췌장암의 완치율은 13.9%입니다. 

췌장암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의사들이 췌장암에 붙이는 몇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가장 빠른 암', '가장 딱딱한 암', 그리고 '1기부터 전신암' 정도입니다. 가장 빠른 암이란 말은 직관적으로 와닿는데, 나머지는 쉽게 이해가 어렵죠. 

'가장 딱딱한 암'은 췌장암 종양 근처가 섬유화 돼 딱딱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암은 보통 종양이 뭉치는 형태로 생겨 퍼져나갑니다. 하지만 췌장암은 종양이 듬성듬성 자라고, 그 사이를 딱딱해진 조직으로 채우는 형태입니다. 이 딱딱한 조직이 췌장암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치료제 등이 췌장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습니다. 

심지어 이 경화 현상은 사람에게서만 주로 나타납니다. 췌장암에 걸린 실험동물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약회사들이 줄줄이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돌입했다가 실패를 겪는 이유입니다. 

'1기부터 전신암'이라는 말은, 췌장암이 생긴 직후부터 이미 진단으로 관측하기 어려운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조기에 잘 발견해 수술이 이뤄져도 절반에 달하는 환자들의 암이 재발하는 겁니다. 역시 췌장의 치료를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변이 노리는 표적치료제 아직…가능성↑
췌장암의 변이는 이미 50년도 더 전에 밝혀졌습니다. KRAS, P53, P16 등 3가지가 가장 흔한 변이입니다. 이 중 KRAS(주로 '케이-라스'라고 부릅니다)는 종양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고, P53과 P16은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입니다. KRAS에 변이가 생겨 종양이 마구 늘어나고, P53과 P16에 변이가 생기면서 종양 억제 기능이 사라지는 식입니다. 

다른 두 변이보다는 KRAS 변이를 억제하는 게 근본적으로 종양을 통제하는 방식이 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KRAS 변이에 대응하는 치료제 개발에 실패해 왔다는 게 문제였는데, 2년 전부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암젠이 2021년에, 미국의 종양 전문 회사 미라티 테라퓨틱스가 2022년 말에 각각 FDA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최초의 KRAS 표적치료제 '루마크라스' (자료=루마크라스 홈페이지)]

다만, 이 치료제들은 폐암에서 주로 발견되는 KRAS 변이에만 대응하는 치료제라는 게 한계점입니다. KRAS는 그 종류에 따라 G12C, G12D, G12V 등 4~5개의 타입으로 나뉩니다. 앞서 소개된 두 치료제 모두 G12C만 표적하는 치료제입니다. 폐암에서 KRAS가 발견되는 비율은 25%, 그중 G12C는 절반에 육박하지만, 췌장암에선 2%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로 췌장암에 쓰긴 어려운 치료제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현시점에서 대다수의 췌장암 환자들은 독한 세포독성 항암제를 써야 합니다. 심지어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치료법은 이 독한 항암제 3개를 동시에 쓰는 방식입니다. 내성도 곧잘 생기기 때문에 몇 년 치료를 해 보다가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어지는 환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난공불락이었던 KRAS의 표적치료제가 개발됐다는 건 분명 고무적입니다. 미라티는 이미 췌장암에서 가장 흔한 KRAS 변이 종류인 G12D의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 1상을 승인받고 환자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대안이 없는 치료제가 등장할 경우 허가를 빠르게 내주는 FDA의 특성상, 효능만 입증한다면 2~3년 뒤에는 허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표적치료제를 췌장암에 아예 못 쓰는 건 아닙니다. 환자에 따라 온갖 종류의 변이가 있기 때문에, 치료제가 있는 변이라면 췌장암 이외에 쓰이는 약이더라도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류지곤 /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미국에서 KYT라고 해서 Know Your Tumor(너의 암을 알라)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환자의 유전자를 조사해서 존재하는 모든 변이를 밝혀내는 작업입니다. 그 결과 췌장암 환자의 20% 정도는 기존에 있는 표적치료제를 쓸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표적치료제를 쓴 집단과 기존 항암제만 쓴 집단 차이에 효과가 2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결과도 나왔고요. 그래서 미국의 가이드라인은 종양의 유전자분석을 추천하고, 거기에 걸리는 표적이 있으면 췌장암 허가가 없어도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약마다 정해진 질환을 넘나들며 쓸 수 없도록 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도입하긴 어렵습니다.

'완치로 가는 길' 수술…범위 넓어져
췌장암 환자 중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비중은 30% 정도입니다. 그나마 과거엔 20% 수준이었는데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수술을 받는다면 20~30% 정도는 완치도 가능하지만, 1기에 수술을 받는 경우라도 약 절반은 재발합니다. 초기부터 전이가 발생하는 췌장암의 특성상, 진단으로 발견하지 못한 전이가 몸 곳곳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수술조차 못 받던 환자들이 항암치료의 발전과 수술 전후 치료 기술의 발달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단 췌장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암은 수술 없인 '완치'로 가기 어렵습니다. 다른 암에서 유행처럼 번진 치료법이 잘 도입되지 않은 췌장암이지만, '선 항암치료-후 수술', 즉 먼저 암의 크기를 줄여서 수술 가능 범위로 환자를 호전시키는 시도는 빠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난관' 동맥 절제, 극복 중
좀 더 구체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췌장암은 몸속에서 잘 움직이는 위나 장과 달리 복막에 딱 달라붙어 있는 장기입니다. 절제 전에 박리를 꼭 해야 한다는 건데, 췌장 근처에는 십이지장, 담도, 위, 소장이 지나가고, 췌장 뒤쪽으로는 대동맥에서 바로 갈라지는 중요 동맥도 2개나 지나갑니다. 박리 과정에서 이 장기와 혈관이 줄줄이 붙어 나오기 때문에 췌장만 깔끔하게 잘라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료=대한종양외과학회 홈페이지]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혈관이었습니다. 췌장 뒤쪽을 지나는 2가지 동맥의 이름은 '복강동맥', '상간장막동맥'입니다. 복강동맥은 간과 위에 피를 공급하고, 상장간막동맥은 소장과 대장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중 복강동맥은 끊어내더라도 우회로가 있어 피를 공급할 수 있었지만, 상장간막동맥은 끊고 다시 혈관을 이어줘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의 합병증이 심각해 사실상 수술이 어려웠는데, 상황이 최근 몇 년간 달라지고 있습니다.

[김선회 / 중앙대광명병원 외과 교수 : 상장간막동맥 절제술은 너무 사망률이 높았어요. 서너명 수술하면 한명이 죽으니까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죠. 그런데 이제 와선 약도 좋아지고 수술 후 관리도 많이 발전하면서 과감하게 시도를 하는 겁니다. 세계적으로는 독일에 주도적으로 하는 대학이 있어서 유럽에 많이 퍼졌고요. 일본이나 우리나라도 일부 병원에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아주 획기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 그래도 수술을 안 한 사람보단 낫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췌장암의 수술은 전반적인 항암치료의 발전과 함께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수술이 가능한 환자 수가 늘었고, 수술이 가능한 중증도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 범위가 넓어지고 안정성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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