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눈 지새는 불면증…약도 상담도 달라졌다 [의술, 이게 최신]
SBS Biz 이광호
입력2023.03.03 16:03
수정2023.03.04 10:51
지난 2021년 집계된 전국의 불면증 환자는 약 68만 명입니다. 생각보다 적죠. 잠이 좀 안 오고 뒤척여도 '다들 그러려니' 하며 버티는 분들이 많고, 혹은 심각성을 느끼더라도 약을 먹기 싫어서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병이 그렇듯 불면증, 혹은 수면장애도 방치하면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집니다. 불면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치료법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Q. 불면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의학적인 기준이 있긴 한데,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쓰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결정된다고 봐야 하는데요.
일단 의학적 기준을 보면, 불을 끈 뒤 뇌파가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실제 잠들었다고 느끼는 시간과 다를 수 있습니다)이 5~30분을 벗어나는 경우, '수면 개시 장애'라는 게 있다고 봅니다. 또, 침상에 누워 있는 시간 중 뇌파로 측정한 수면 시간이 85% 이하라면 역시 수면장애가 있다고 보고요. 얕은잠-깊은잠-렘수면(꿈잠)이 90~120분 동안 한 사이클로 이어지는 순환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역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다음날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입니다. 다음날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집중이 어렵다는 등의 지장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현실적으론 가장 중요한 수면 장애의 지표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측정할 순 없겠지만) 똑같은 수준의 잠을 잔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스스로 불면증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멀쩡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저 잠 못 드는 것만이 불면증이 아닙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꾸 깨는 증상(밤에 화장실을 자꾸 가는 남성은 전립선이 아니라 수면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려고 하면 자꾸 다리를 움직이고 싶고 불편해 두들기는 증상도 넓은 의미의 불면증이고요. 잠을 잘 잤는데도 아침에 피곤한 증상, 그리고 수면 무호흡 증상까지 모두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Q. 꼭 치료가 필요한가
'잠이 보약'이라는 민간요법 같은 이야기 말고도, 불면증은 우리 몸의 각종 대사 증후군을 일으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 등을 뜻하는데요. 주로 심장과 뇌가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되면서 질환으로 이어지는 식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뚜렷하게 혈관에 문제가 생기고, 이어 소화기관 문제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주은연 /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우리 몸에는 '생체시계'라고 하는 뇌하수체 내의 작은 뇌 조직이 있습니다. 이 기관은 자고 깨는 시간, 모든 장기의 움직임, 세포와 뇌의 활동, 호르몬과 체온까지 조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잠을 잘 못 자거나 자고 깨는 리듬이 불규칙해지면 이 조직의 흐름이 망가져요. 내분비계를 포함해 모든 장기 기능이 떨어지면서 혈관도 망가지게 돼 있습니다.]
수면 무호흡 역시 마찬가집니다. 특히 코골이와 무호흡증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해 반려자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 산소가 부족해진 몸이 각성 상태에 들어가고, 이는 결국 불면증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Q. 수면제는 불안하다는 분들이 많을 텐데
첫째로, 수면제를 꼭 써야 하는 불면증이 있고 아닌 불면증이 있습니다. 불면증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걸려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급성이라면 수면제를 처방하고요. 자려고 누웠는데 다리가 불편한 '하지불안증후군'은 착각이나 습관 문제가 아니라 뇌의 호르몬 문제입니다. 역시 약이 필요합니다.
또, 불면증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 예컨대 감정장애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과 얽힌 경우에는 해당 질환에 맞는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꼭 약을 써야 하는 원인이 아니라면, 불면증에 걸렸다고 약을 처방하는 건 점점 의료 현장에서 삼가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설령 약을 쓰더라도 최근 들어 국내에 과거와 다른 약들이 많이 도입돼 선택지가 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의존성이 심해지고, 발작 등의 금단증상을 일으킨다고 여기는 약은 '신경안정제' 계열의 약입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이 가장 흔히 쓰였죠.
최근에는 '비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2019년 '에스조피클론'이란 성분의 약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해 현재는 21품목이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잘레플론'이란 성분의 약도 부광약품 한 곳에서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약들은 오래전 해외에서 출시된 신약의 복제약을 국내에 들여온 것이고, 아예 신약도 있습니다. 2019년 말 미국에서 허가가 나온 에자이제약의 '렘보렉산트'라는 약으로, 국내 도입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렘보렉산트는 장기 의존성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난 '졸피뎀'과 비교해 수면에 드는 시간도 빠르고 악몽과 졸림 증상도 적었습니다. 특히 임상시험에서 복용을 중단한 후 금단 징후 또는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Q. 약 말고는 어떤 치료를 하나
인지행동 치료라는 게 있습니다. 애초에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채 안 된 최신 치료입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수면에 대해 좋은 생각과 좋은 습관을 갖도록 유도하는 치료인데요. 보편화된 치료가 아니다 보니 여러 오해들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잠드는 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수칙들이 이런 인지행동 치료의 일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상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야 한다, 자기 전에 술을 마시지 말고, 꾸준히 운동하는 게 효과적이다, 잠들기 어렵다면 커피는 마시지 말라…모두 아는 것들이죠?(물론 이게 인지행동치료의 전부는 아닙니다)
치료 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2주 간격으로 4~6회 정도 진행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뻔한 소리 듣는데, 굳이 병원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면 관련 수칙을 잘 지켜서 생활한다면, 수면장애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의사들도 인정합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수십 가지 수면 수칙을 다 지키면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무수히 많고요.
치료의 핵심은 여러 가지 수칙과 수면 관련 생각들 중에, 무엇이 환자의 불면증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파악해 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가장 적은 행동 개선만으로도 실제 수면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주은연 /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예를 들어, 원래 12시부터 7시까지 자던 사람이 최근 잠을 잘 못 잤다고 밤 9시, 10시부터 누워요.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면서 자기 생활습관보다 일찍 가서 자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생활에 실패했다고 하는 등 자책하는 경우가 있죠. 이런 행동·심리 관련 문제를 맞춤형으로 가르쳐 주는 게 인지행동 치료예요. 환자의 문제가 뭔지 잘 골라야 해요.]
Q. 앱으로도 치료할 수 있게 됐다던데
지난달에 첫 디지털 치료기기가 허가를 받았습니다. '솜즈'라는 이름의 앱으로, 쉽게 비유하자면 의사가 인지행동 치료 와중에 해야 하는 '잔소리'를 앱으로 구현한 치료기기입니다. 2주 간격으로 병원을 찾는 대신, 매일 일기처럼 자신의 수면 상태를 입력하면, 앱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행동과 생각(인지행동 치료와 같은)을 알려 주는 방식입니다.
병원을 찾는 번거로움을 덜고, 나아가 2주에 한 번씩만 받을 수 있는 처방과 교정 치료를 실시간에 가깝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허가 과정에서 특이한 건 임상시험이었습니다. 단순히 앱을 사용한 뒤 불면증이 개선됐다는 식으로 임상을 한 게 아니라 '가짜 앱'을 만들었습니다. 수면 관련 알람을 띄워 주는 앱이긴 한데, 환자의 상태에 따른 알고리즘을 적용하진 않은 앱이었죠. 이를테면 신약의 임상실험 과정에서 위약을 받는 대조군을 앱에서도 구현한 겁니다.
[임진환 / 에임메드(솜즈 개발사) 대표: 임상실험 결과 대조군과 실험군 사이에 2~3배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고요. 수면장애를 완치했다고 보는 '관해' 환자의 비율은 48% 정도 됐습니다. 초창기 개발본부장이 빡빡하게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싶어 했고요. 미국의 치료기기 앱 '솜리스트'가 어떤 임상을 했는지 보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임상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솜리스트'는 2020년 미국에서 허가받은 최초의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입니다. 디지털치료기기로도 미국에서 3번째로 허가받은 선발주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솜리스트의 성과가 썩 좋진 않았습니다. 이 앱을 출시한 '페어(PEAR)'사의 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가 출시한 3가지 앱(중독 치료 앱 2가지와 불면증 치료 앱)의 이행률은 51%에 불과했습니다. 처방을 받은 환자의 절반만이 실제 치료 앱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실행조차 안 하는데, 9주짜리 프로그램을 마치는 경우는 훨씬 적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칠게 말해, 사람이 해도 들을까 말까 한 잔소리를 앱이 한다고 충실히 따르겠느냐는 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임상실험과 실제 치료 현장에서의 격차가 벌어지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임상실험은 보수를 주고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다 보니 훨씬 열심히 치료에 임하게 되고, 이게 치료 현장과 실질적인 왜곡을 낳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내 개발사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의료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임진환 / 에임메드 대표: 미국은 의사가 처방을 하더라도 환자가 약을 선택할 수가 있어요. 약사도 임의로 약을 바꿀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의사들의 말을 많이 따르는 편이죠. 만약 의사가 앱 치료를 처방하고 환자가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올 때 처방한 디지털 치료기기를 얼마나 잘 썼는지 확인한다고 하면, 단순한 건강관리 기기를 주는 것보다 환자에게 훨씬 더 많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디지털 치료기기는 오는 6월쯤 일부 병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뒤, 연말쯤에는 좀 더 널리 사용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미국과 우리 의료 문화의 차이가 디지털 치료에는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Q. 불면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의학적인 기준이 있긴 한데,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쓰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결정된다고 봐야 하는데요.
일단 의학적 기준을 보면, 불을 끈 뒤 뇌파가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실제 잠들었다고 느끼는 시간과 다를 수 있습니다)이 5~30분을 벗어나는 경우, '수면 개시 장애'라는 게 있다고 봅니다. 또, 침상에 누워 있는 시간 중 뇌파로 측정한 수면 시간이 85% 이하라면 역시 수면장애가 있다고 보고요. 얕은잠-깊은잠-렘수면(꿈잠)이 90~120분 동안 한 사이클로 이어지는 순환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역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다음날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입니다. 다음날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집중이 어렵다는 등의 지장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현실적으론 가장 중요한 수면 장애의 지표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측정할 순 없겠지만) 똑같은 수준의 잠을 잔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스스로 불면증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멀쩡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저 잠 못 드는 것만이 불면증이 아닙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꾸 깨는 증상(밤에 화장실을 자꾸 가는 남성은 전립선이 아니라 수면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려고 하면 자꾸 다리를 움직이고 싶고 불편해 두들기는 증상도 넓은 의미의 불면증이고요. 잠을 잘 잤는데도 아침에 피곤한 증상, 그리고 수면 무호흡 증상까지 모두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Q. 꼭 치료가 필요한가
'잠이 보약'이라는 민간요법 같은 이야기 말고도, 불면증은 우리 몸의 각종 대사 증후군을 일으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 등을 뜻하는데요. 주로 심장과 뇌가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되면서 질환으로 이어지는 식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뚜렷하게 혈관에 문제가 생기고, 이어 소화기관 문제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주은연 /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우리 몸에는 '생체시계'라고 하는 뇌하수체 내의 작은 뇌 조직이 있습니다. 이 기관은 자고 깨는 시간, 모든 장기의 움직임, 세포와 뇌의 활동, 호르몬과 체온까지 조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잠을 잘 못 자거나 자고 깨는 리듬이 불규칙해지면 이 조직의 흐름이 망가져요. 내분비계를 포함해 모든 장기 기능이 떨어지면서 혈관도 망가지게 돼 있습니다.]
수면 무호흡 역시 마찬가집니다. 특히 코골이와 무호흡증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해 반려자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 산소가 부족해진 몸이 각성 상태에 들어가고, 이는 결국 불면증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Q. 수면제는 불안하다는 분들이 많을 텐데
첫째로, 수면제를 꼭 써야 하는 불면증이 있고 아닌 불면증이 있습니다. 불면증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걸려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급성이라면 수면제를 처방하고요. 자려고 누웠는데 다리가 불편한 '하지불안증후군'은 착각이나 습관 문제가 아니라 뇌의 호르몬 문제입니다. 역시 약이 필요합니다.
또, 불면증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 예컨대 감정장애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과 얽힌 경우에는 해당 질환에 맞는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꼭 약을 써야 하는 원인이 아니라면, 불면증에 걸렸다고 약을 처방하는 건 점점 의료 현장에서 삼가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설령 약을 쓰더라도 최근 들어 국내에 과거와 다른 약들이 많이 도입돼 선택지가 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의존성이 심해지고, 발작 등의 금단증상을 일으킨다고 여기는 약은 '신경안정제' 계열의 약입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이 가장 흔히 쓰였죠.
최근에는 '비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2019년 '에스조피클론'이란 성분의 약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해 현재는 21품목이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잘레플론'이란 성분의 약도 부광약품 한 곳에서 허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 출시된 데이비고(성분명 렘보렉산트)]
이 약들은 오래전 해외에서 출시된 신약의 복제약을 국내에 들여온 것이고, 아예 신약도 있습니다. 2019년 말 미국에서 허가가 나온 에자이제약의 '렘보렉산트'라는 약으로, 국내 도입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렘보렉산트는 장기 의존성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난 '졸피뎀'과 비교해 수면에 드는 시간도 빠르고 악몽과 졸림 증상도 적었습니다. 특히 임상시험에서 복용을 중단한 후 금단 징후 또는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Q. 약 말고는 어떤 치료를 하나
인지행동 치료라는 게 있습니다. 애초에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채 안 된 최신 치료입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수면에 대해 좋은 생각과 좋은 습관을 갖도록 유도하는 치료인데요. 보편화된 치료가 아니다 보니 여러 오해들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잠드는 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수칙들이 이런 인지행동 치료의 일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상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야 한다, 자기 전에 술을 마시지 말고, 꾸준히 운동하는 게 효과적이다, 잠들기 어렵다면 커피는 마시지 말라…모두 아는 것들이죠?(물론 이게 인지행동치료의 전부는 아닙니다)
치료 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2주 간격으로 4~6회 정도 진행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뻔한 소리 듣는데, 굳이 병원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면 관련 수칙을 잘 지켜서 생활한다면, 수면장애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의사들도 인정합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수십 가지 수면 수칙을 다 지키면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무수히 많고요.
치료의 핵심은 여러 가지 수칙과 수면 관련 생각들 중에, 무엇이 환자의 불면증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파악해 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가장 적은 행동 개선만으로도 실제 수면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주은연 /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예를 들어, 원래 12시부터 7시까지 자던 사람이 최근 잠을 잘 못 잤다고 밤 9시, 10시부터 누워요.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면서 자기 생활습관보다 일찍 가서 자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생활에 실패했다고 하는 등 자책하는 경우가 있죠. 이런 행동·심리 관련 문제를 맞춤형으로 가르쳐 주는 게 인지행동 치료예요. 환자의 문제가 뭔지 잘 골라야 해요.]
Q. 앱으로도 치료할 수 있게 됐다던데
지난달에 첫 디지털 치료기기가 허가를 받았습니다. '솜즈'라는 이름의 앱으로, 쉽게 비유하자면 의사가 인지행동 치료 와중에 해야 하는 '잔소리'를 앱으로 구현한 치료기기입니다. 2주 간격으로 병원을 찾는 대신, 매일 일기처럼 자신의 수면 상태를 입력하면, 앱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행동과 생각(인지행동 치료와 같은)을 알려 주는 방식입니다.
병원을 찾는 번거로움을 덜고, 나아가 2주에 한 번씩만 받을 수 있는 처방과 교정 치료를 실시간에 가깝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허가 과정에서 특이한 건 임상시험이었습니다. 단순히 앱을 사용한 뒤 불면증이 개선됐다는 식으로 임상을 한 게 아니라 '가짜 앱'을 만들었습니다. 수면 관련 알람을 띄워 주는 앱이긴 한데, 환자의 상태에 따른 알고리즘을 적용하진 않은 앱이었죠. 이를테면 신약의 임상실험 과정에서 위약을 받는 대조군을 앱에서도 구현한 겁니다.
[임진환 / 에임메드(솜즈 개발사) 대표: 임상실험 결과 대조군과 실험군 사이에 2~3배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고요. 수면장애를 완치했다고 보는 '관해' 환자의 비율은 48% 정도 됐습니다. 초창기 개발본부장이 빡빡하게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싶어 했고요. 미국의 치료기기 앱 '솜리스트'가 어떤 임상을 했는지 보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임상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솜리스트'는 2020년 미국에서 허가받은 최초의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입니다. 디지털치료기기로도 미국에서 3번째로 허가받은 선발주자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앞서 출시된 '솜리스트(somryst)']
그런데 이 솜리스트의 성과가 썩 좋진 않았습니다. 이 앱을 출시한 '페어(PEAR)'사의 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가 출시한 3가지 앱(중독 치료 앱 2가지와 불면증 치료 앱)의 이행률은 51%에 불과했습니다. 처방을 받은 환자의 절반만이 실제 치료 앱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실행조차 안 하는데, 9주짜리 프로그램을 마치는 경우는 훨씬 적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칠게 말해, 사람이 해도 들을까 말까 한 잔소리를 앱이 한다고 충실히 따르겠느냐는 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임상실험과 실제 치료 현장에서의 격차가 벌어지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임상실험은 보수를 주고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다 보니 훨씬 열심히 치료에 임하게 되고, 이게 치료 현장과 실질적인 왜곡을 낳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내 개발사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의료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임진환 / 에임메드 대표: 미국은 의사가 처방을 하더라도 환자가 약을 선택할 수가 있어요. 약사도 임의로 약을 바꿀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의사들의 말을 많이 따르는 편이죠. 만약 의사가 앱 치료를 처방하고 환자가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올 때 처방한 디지털 치료기기를 얼마나 잘 썼는지 확인한다고 하면, 단순한 건강관리 기기를 주는 것보다 환자에게 훨씬 더 많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디지털 치료기기는 오는 6월쯤 일부 병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 뒤, 연말쯤에는 좀 더 널리 사용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미국과 우리 의료 문화의 차이가 디지털 치료에는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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