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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궁금해] 슈퍼 사이클 진입한 'K조선'…환율 급등에 남몰래 웃는다고?

SBS Biz 조슬기
입력2022.10.07 14:26
수정2022.10.17 11:35


모든 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내 조선업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빅3 조선사 모두 3년치 이상 물량을 확보해 놓았고요.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역대급 선박 가격에 고환율은 덤입니다. K조선은 오랜 불황을 털어내고 다시 힘찬 항해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과 향후 전망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오랜 부진 딛고 역대급 수주 호황…3년치 일감 꽉 채웠다
지난해 4월, 한국조선해양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 행사장에서는 주목해야 할 언급이 있었어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조선업황이 슈퍼 사이클 진입 직전이었던 2003년 초입과 상당히 비슷하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인데요.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물론이고 증권사 조선 담당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흥분했습니다. 조선사들이 오랜 불황을 털어내고 다시 도약할 채비를 마쳤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확실히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1위 조선사 현대중공업을 보유한 한국조선해양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까요. 이 때가 국내 조선사들에게 어떤 시기였냐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국내 조선 '빅3'가 오랜 불황을 끝내고 각국에서 몰려드는 선박 발주를 쓸어담던 시기에요. 당시 기준으로 2년 6개월 치 물량을 국내 조선 3사가 일찌감치 확보한 상태였죠.

그로부터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적어도 선박 수주만 놓고 보면 슈퍼 사이클에 한걸음 더 다가선 모습입니다. '빅3' 모두 3년 치 이상 물량을 확보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2025~ 2026년까지 빅3 조선사들의 도크, 건조 공간 예약이 꽉 찼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선사들이 해외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는 수주 실적만 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기관인 '클락슨 리서치'라는 곳이 있는데요. 여기서 전세계 조선사 선박 수주량을 매달 집계해 발표합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집계된 글로벌 선박 수주량은 모두 2,768만 CGT. 표준화물선 환산톤수라고 부르는 CGT는 종류나 크기가 제각각인 선박의 특징을 반영해 만든 일종의 표준 중량 단위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이 1,235만 CGT로 전체의 45%, 한국이 1,192만 CGT로 43%를 기록하며 두 나라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점유율이 2%p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죠. 두 나라 조선사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수주를 따내는 구조가 점유율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입니다. 

'고부가 선박' 강자 K조선…글로벌 LNG선 발주 싹쓸이

흔히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있죠? 석탄이나 철광석, 곡물 등을 운송하는 벌크선을 비롯해 자동차 운반선, 컨테이너선은 건조 기술이 어렵지 않아 단가가 저렴한 축에 속합니다. 그러나, 진짜 돈이 되는 고부가 선박에서 국내 조선사 점유율은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데요.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 LNG 운반선 수주 실적만 따로 떼놓고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은 모두 115척으로 이 중 94척을 국내 조선 3사가 수주했어요.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무려 82%입니다. 국내 조선사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고 싶어도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시장이라고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LNG선 건조의 핵심 기술은 섭씨 영하 163도 이하에서 냉각된 LNG를 생산 기지에서 저장 기지로 가스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운반하는 것인데요. 이 기술력은 현재 국내 조선사가 가장 앞서 있습니다.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배 한척당 2,000억 원이 넘는 높은 단가를 형성하고 있죠. 여기에 글로벌 LNG선 수주가 한국으로 몰리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2018년 6월, 중국의 한 조선사가 건조한 LNG선 '글래스톤호'가 호주 인근 바다에서 고장으로 멈춰서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후둥중화조선'이라는 업체가 만든 LNG선이었는데요. 사고 직후 급히 수리를 결정했지만 결함이 발견되면서 2년 만에 폐선을 결정하게 되죠. 이 사건으로 중국 조선사는 글로벌 LNG선 건조 시장에서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LNG선 발주가 한국의 조선사들에게 집중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서 LNG선은 마진이 상당히 좋다고 했죠? 자동차와 비교해 보면 이해하기가 쉬운데요. 현대차가 쏘나타를 팔아 남는 이익보다 제네시스를 팔아 남기는 이익이 훨씬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배 한 척당 2,000억 정도라고 했는데, 이는 작년 가격이고요.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비싸졌습니다. 지난달 LNG선 가격이 2억4,000만 달러니까 원화로 환산하면 3,000억이 넘는다고 봐야 합니다. 업계에서는 2억 달러만 넘어도 이익이 남는 수준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그보다 지금 20% 이상 올라 있으니까 영업 마진이 최소 두 자리는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환경 규제 강화에 러 우크라 침공 겹쳐 LNG선 수주 초호황

고가의 선박 수주량이 늘었다는 건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분명 좋은 일입니다. 여기에 운도 따랐다는 평이 많은데요. 환경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고 있어서입니다. 국제해사기구 IMO는 재작년부터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을 3% 줄이는 규제를 시행 중이고요. 그리고 오는 2025년까지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최소 30% 감축하는 규제도 내놨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 규제를 충족하는 신규 선박 발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친환경 연료로 운항하는 선박과 친환경 연료를 운송하는 선박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61%가 친환경 연료 선박이고, 이 중 절반을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했습니다. 액화천연가스 LNG를 비롯해 액화석유가스 LPG, 메탄올, 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이중연료 추진선과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 추진선, LNG를 운반하며 연료로 사용하는 LNG선이 대표적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의 에너지 정책이 흔들린 것도 국내 조선사들에게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스관을 통해 LNG를 수입해오던 방식이 막히게 되자 유럽은 대체 공급원으로 중동, 특히 카타르 LNG를 낙점했습니다. 카타르는 지난 1971년,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에 자리한 앞바다 노스필드 지역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면서 러시아와 이란에 이어 세계 3위 천연가스 대국이 됐는데요.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 수요가 높아지자 카타르는 천연가스를 더욱 증산했고요. 이게 카타르발 LNG선 대규모 발주로 이어진 겁니다.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인 카타르페트롤리엄이 재작년 6월 국내 조선 빅3와 100척이 넘는 LNG선 건조 슬롯 계약을 체결한 게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힙니다.겨울로 접어드는 북반구 계절 특성과 유럽발 에너지 대란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라 국내 조선사들이 얻을 반사 이익은 향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역대급 선박 가격에 고환율까지…흑자 전환 청신

잇단 수주 낭보에 고공 행진하는 선가까지 조선사 입장에서는 이제 실적이 좋아질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증권가에서도 올해 3분기가 국내 조선사들이 흑자로 돌아서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요. 지난해부터 누적된 수주 물량이 올해부터 실적으로 잡히고 역대 최고가를 찍은 선가와 맞물려 조선사들의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의 고환율도 흑자 전환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요. 통상 환율 상승은 기업들에게 원가 부담을 높이는 악재로 작용하죠. 그러나 조선업체들은 대부분 달러로 수주를 합니다. 선박 대금을 달러로 결제받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자연스럽게 원화 매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예를 들어 선박 수주 당시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었는데 인도 시점에 1,400원으로 오르면 그만큼 원화 매출도 늘어나는 혜택을 누리는 셈입니다. 

조선사들은 선박을 수주하면 나중에 받을 수출 대금에 대한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일정 규모 환헤지 거래를 하는데요. 장래 일정 시점에 일정 환율로 수주 대금을 안정적으로 수령하기 위한 조치지만, 일정 규모는 환헤지를 하지 않고 오픈 포지션으로 남겨 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환율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환차익이나 환차손을 떠안는다는 뜻인데요. 최근 들어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다는 걸 감안하면, 조선사 입장에서는 헤지하지 않은 부분의 이익 폭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수주 실적, 높은 선가, 고환율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만큼 조선사들의 올해 3분기 실적 개선세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업계에서는 국내 조선업이 슈퍼 사이클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고 업황도 국내 조선사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서입니다. 당장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처를 다변화하면서 국내 LNG선을 찾는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어 수주 풍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요.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이라는 것도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는 디젤 엔진을 이용하는 기존 선박들의 교체 수요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단 뜻입니다. 또 지금까지 발주가 나온 선박들은 정기버스처럼 운영되는 정기선들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택시처럼 움직이는 부정기선이라고 하는 탱커나 벌커, 이런 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배들이 친환경 규제에 발 맞춰 본격적으로 교체된다면 시장에 나오는 발주 수요 볼륨 자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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