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하나로 장난감 시장을 제패하다…파산 위기도 극복한 레고의 장수 비결은? [브랜드의 탄생]
SBS Biz 류선우
입력2022.09.07 11:27
수정2022.10.04 13:52
레고의 시작은 나무로 만든 장난감
레고의 시작은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었습니다. 창업주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덴마크 작은 마을에 살던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원래는 주로 사다리나 창문, 의자 같은 걸 만들어 팔았는데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오면서 목공소가 어려워졌습니다. 그에겐 아들이 넷이나 있었는데 1932년엔 아내가 세상을 먼저 떠났고, 갖은 역경 속에 올레는 어떻게든 살아갈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때 찾아낸 게 장난감입니다. 올레는 평소에 쓰고 남은 나무 조각들로 자식들한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또 팔기도 했거든요. 근데 돌이켜보니 그동안 가장 잘 팔린 제품이 장난감인 거예요. 그걸 깨닫고 올레는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팔기 시작합니다. 회사명은 1934년에 확정 지었는데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레그고트(LEG GODT) 앞 글자를 따왔습니다.
올레는 평범한 목수는 아니었습니다. 나무 장난감 하나도 최선을 다해 만드는 장인이었죠. 그의 작업장에 걸려있던 ‘최고만이 최선이다’라는 글귀는 지금까지도 레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입니다.
한번은 올레의 셋째 아들이 오리 인형 배달을 다녀와서 아버지한테 자랑을 합니다. 원래 세 겹씩 칠하던 광택제를 오늘은 두 번만 칠해서 팔았는데 티도 안 나고 시간하고 재료비를 아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올레는 버럭 화를 냅니다. 그 인형들을 당장 다시 찾아와서 광택제를 덧칠해 다시 배달하라고 하죠.
레고가 자리를 잡아가던 1939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는데 전쟁이 장난감 사업에는 예상 밖 호재로 작용합니다. 피폐한 현실 때문인지 장난감 수요는 오히려 늘었고 외국 장난감 수입은 금지되거든요. 이에 1941년 레고의 매출은 1년 만에 두 배가 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목재 수급은 어려워지고 합성수지 기술은 발전했는데요. 품질을 높이고 생산을 효율화할 새로운 방법을 찾던 올레는 1947년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사 와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49년에는 오늘날 레고 블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최초의 플라스틱 블록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을 출시합니다.
'장난감'을 넘어선 '놀이 시스템'
올레가 노환으로 차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때쯤부터 앞서 광택제 덜 발랐다가 혼났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가 주니어 부사장으로서 회사 운영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레고를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만들게 되는데요. 바로 ‘시스템’ 도입입니다.
1954년 어느 날 고트프레드는 누군가에게 “여러 세트의 장난감이 연관되는 일관된 시스템을 개발해야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지 않겠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이 계속 맴돌던 그는 그동안 회사에서 팔아왔던 200개가 넘는 모든 장난감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블록이 시스템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즉시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때의 레고 블록은 지금과 달리 쌓으면 고정이 안 되고 쉽게 무너지곤 했습니다. 견고한 결속력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돌기와 튜브를 고안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현재 우리가 아는 모양의 가로 3.2cm, 세로 1.6cm의 2x4 레고 블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1958년 1월, 덴마크에서 레고 블록 최초의 특허 출원이 이뤄집니다. 이로써 레고는 다른 장난감 회사엔 없는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데요. 이 연결성이 얼마나 뛰어나냐 하면 1958년 이후 생산된 모든 레고 블록은 디자인이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호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블록 단 여섯 개로 무려 9억 1500만개의 조합을 만들 수 있죠.
이런 ‘시스템’의 효과로 레고가 아이들 창의성 계발에 좋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1978년 1억 4200만 달러였던 레고의 매출은 1993년 12억 달러로 10배가량 늘어나게 됩니다.
시대 변화 속 정체성 약화로 파산 위기에 내몰리다
그렇게 수십 년간 승승장구하던 레고에도 파산할 만큼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베이비 붐 시대가 끝나면서 어린이 장난감 시장이 위축되는 와중에 디지털 게임이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데요. 1988년에는 레고 블록에 대한 특허 기한마저 만료되었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레고라는 로고만 붙이지 않으면 레고 블록과 호환되는 블록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위기 속에 레고는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테마파크나 의류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신상품도 마구잡이로 늘립니다. 그렇게 레고는 특허 출원 후 40년 만인 1998년 처음으로 48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합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4년에는 2억 7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며 파산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결국, 위기의 레고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는데요. 창업자 일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30대의 맥킨지사의 컨설턴트 출신 예르겐 비 크누스토르프를 CEO로 발탁합니다. 이 젊은 CEO가 세운 위기 극복 전략의 핵심은 ‘블록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rick)’ 였는데요. 비대해진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없는 블록은 대폭 줄이고 표준 블록 비중을 70%까지 늘립니다. 또 의류 등 비주력 사업들도 모두 정리합니다. 그렇게 전문경영인 등판 1년 만인 2005년 레고는 역전에 성공, 꾸준한 매출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고에 대한 위협은 끝난 게 아닙니다. 2017년, 레고는 다시 적자를 기록했거든요. 신제품 판매 부진으로 인한 재고 처리 때문이라지만 급변하는 환경 속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것입니다. 인구는 갈수록 나이 들어가고 경쟁자는 늘어나는 가운데 레고는 앞으로도 본질을 지키며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레고의 시작은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었습니다. 창업주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덴마크 작은 마을에 살던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원래는 주로 사다리나 창문, 의자 같은 걸 만들어 팔았는데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오면서 목공소가 어려워졌습니다. 그에겐 아들이 넷이나 있었는데 1932년엔 아내가 세상을 먼저 떠났고, 갖은 역경 속에 올레는 어떻게든 살아갈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때 찾아낸 게 장난감입니다. 올레는 평소에 쓰고 남은 나무 조각들로 자식들한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또 팔기도 했거든요. 근데 돌이켜보니 그동안 가장 잘 팔린 제품이 장난감인 거예요. 그걸 깨닫고 올레는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팔기 시작합니다. 회사명은 1934년에 확정 지었는데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레그고트(LEG GODT) 앞 글자를 따왔습니다.
올레는 평범한 목수는 아니었습니다. 나무 장난감 하나도 최선을 다해 만드는 장인이었죠. 그의 작업장에 걸려있던 ‘최고만이 최선이다’라는 글귀는 지금까지도 레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입니다.
한번은 올레의 셋째 아들이 오리 인형 배달을 다녀와서 아버지한테 자랑을 합니다. 원래 세 겹씩 칠하던 광택제를 오늘은 두 번만 칠해서 팔았는데 티도 안 나고 시간하고 재료비를 아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올레는 버럭 화를 냅니다. 그 인형들을 당장 다시 찾아와서 광택제를 덧칠해 다시 배달하라고 하죠.
레고가 자리를 잡아가던 1939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는데 전쟁이 장난감 사업에는 예상 밖 호재로 작용합니다. 피폐한 현실 때문인지 장난감 수요는 오히려 늘었고 외국 장난감 수입은 금지되거든요. 이에 1941년 레고의 매출은 1년 만에 두 배가 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목재 수급은 어려워지고 합성수지 기술은 발전했는데요. 품질을 높이고 생산을 효율화할 새로운 방법을 찾던 올레는 1947년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사 와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49년에는 오늘날 레고 블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최초의 플라스틱 블록 ‘오토매틱 바인딩 브릭’을 출시합니다.
'장난감'을 넘어선 '놀이 시스템'
올레가 노환으로 차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때쯤부터 앞서 광택제 덜 발랐다가 혼났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가 주니어 부사장으로서 회사 운영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레고를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만들게 되는데요. 바로 ‘시스템’ 도입입니다.
1954년 어느 날 고트프레드는 누군가에게 “여러 세트의 장난감이 연관되는 일관된 시스템을 개발해야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지 않겠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이 계속 맴돌던 그는 그동안 회사에서 팔아왔던 200개가 넘는 모든 장난감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 블록이 시스템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즉시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때의 레고 블록은 지금과 달리 쌓으면 고정이 안 되고 쉽게 무너지곤 했습니다. 견고한 결속력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돌기와 튜브를 고안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현재 우리가 아는 모양의 가로 3.2cm, 세로 1.6cm의 2x4 레고 블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1958년 1월, 덴마크에서 레고 블록 최초의 특허 출원이 이뤄집니다. 이로써 레고는 다른 장난감 회사엔 없는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데요. 이 연결성이 얼마나 뛰어나냐 하면 1958년 이후 생산된 모든 레고 블록은 디자인이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부 호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블록 단 여섯 개로 무려 9억 1500만개의 조합을 만들 수 있죠.
이런 ‘시스템’의 효과로 레고가 아이들 창의성 계발에 좋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1978년 1억 4200만 달러였던 레고의 매출은 1993년 12억 달러로 10배가량 늘어나게 됩니다.
시대 변화 속 정체성 약화로 파산 위기에 내몰리다
그렇게 수십 년간 승승장구하던 레고에도 파산할 만큼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베이비 붐 시대가 끝나면서 어린이 장난감 시장이 위축되는 와중에 디지털 게임이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데요. 1988년에는 레고 블록에 대한 특허 기한마저 만료되었습니다. 다른 회사들도 레고라는 로고만 붙이지 않으면 레고 블록과 호환되는 블록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위기 속에 레고는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테마파크나 의류 등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신상품도 마구잡이로 늘립니다. 그렇게 레고는 특허 출원 후 40년 만인 1998년 처음으로 48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합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4년에는 2억 7000만 달러의 적자를 내며 파산 위기까지 겪었습니다.
결국, 위기의 레고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는데요. 창업자 일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30대의 맥킨지사의 컨설턴트 출신 예르겐 비 크누스토르프를 CEO로 발탁합니다. 이 젊은 CEO가 세운 위기 극복 전략의 핵심은 ‘블록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rick)’ 였는데요. 비대해진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없는 블록은 대폭 줄이고 표준 블록 비중을 70%까지 늘립니다. 또 의류 등 비주력 사업들도 모두 정리합니다. 그렇게 전문경영인 등판 1년 만인 2005년 레고는 역전에 성공, 꾸준한 매출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고에 대한 위협은 끝난 게 아닙니다. 2017년, 레고는 다시 적자를 기록했거든요. 신제품 판매 부진으로 인한 재고 처리 때문이라지만 급변하는 환경 속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것입니다. 인구는 갈수록 나이 들어가고 경쟁자는 늘어나는 가운데 레고는 앞으로도 본질을 지키며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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