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Biz

[산업 막전막후] '유서까지 썼는데 최저시급'…대한항공의 헐값 보상

SBS Biz 김정연
입력2022.07.20 14:16
수정2022.07.20 18:00

[앵커] 

지난 9일 비행하던 대한항공 여객기의 엔진에 이상이 생겨 비상 착륙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죠. 



일부 승객들은 휴대폰으로 유서까지 작성하는 긴박한 상황을 겪었고, 도착 예정시간보다 23시간이 더 지나서야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승객에게 대한항공이 지급한 보상은 24만 원가량의 항공권 할인권입니다. 

시간당 1만 원 꼴 보상인 셈인데요.

거의 최저시급 수준입니다. 



다시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은데 비행기를 또 타야 쓸 수 있는 할인권을 줬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대한항공의 보상이 적절한 수준이었던 건지, 김정연 기자와 따져보겠습니다. 

지난 9일의 사고,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기자] 

지난 9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의 엔진이 고장 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당시 승객들에 따르면 여객기가 이륙한 지 1시간 반 만에 오른쪽 날개 아래 엔진에서 불꽃이 튀고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비상 착륙할 공항을 찾는 2시간 동안 여객기는 이 상태로 비행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이 모 씨 / 지난 9일 KE9956편 탑승객 : 제가 엔진 근처 자리를 앉았는데 진동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엔진 쪽에서 불꽃이 튀면서 펑펑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저처럼 패닉이어서 유서를 쓴 사람도 있고 같이 가족들이랑 손잡고 사랑한다고 마지막 인사하신 분들도….] 

항공기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공항에 비상 착륙했고요.

비상 착륙시간과 공항 대기시간을 합쳐 총 23시간 도착이 지연됐습니다. 

대한항공은 최근 승객들에게 이번 사고의 보상으로 1명당 24만 원 상당의 우대 할인권을 지급했습니다. 

[앵커] 

목숨이 위험할 뻔한 상황에 대한 보상금 치고는 시간당 1만 원은 적은 액수인 것 같은데요.

대한항공은 왜 보상 액수와 방법을 이렇게 정한 겁니까? 

[기자] 

대한항공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보상 액수를 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공정위 소비자 분쟁 해결 권고 기준에는 국제 여객기가 12시간을 초과해 운송 지연되면 해당 구간 운임의 30%를 배상하도록 돼 있습니다. 

해당 항공권의 왕복 가격이 160만 원이었으니 편도 가격 80만 원의 30%로 책정했다는 겁니다. 

다만 이 공정위 기준은 권고 기준이고, 다른 조건 없이 지연 시간만 고려된 기준입니다. 

대한항공은 현금이 아닌 우대 할인권을 지급한 이유에 대해서는 자사 규정에 명시된 보상 조항을 따랐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한항공은 홈페이지에 게시된 운송약관에 "대한항공의 태만 또는 고의적인 과실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경우 외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공개했기 때문에 이번 보상 조치가 위법한 사안은 아닙니다. 

[앵커] 

단순히 도착 지연에 대한 보상 이외에 정신적 피해 등 추가 보상을 인정한 사례는 없나요? 

[기자] 

과거 유사 사례에서 법원이 판단한 배상액의 수준은 더 높습니다. 

지난 2018년에도 대구에서 삿포로로 향하던 에어부산 항공기가 비행 중 엔진 고장으로 비상 착륙해 목적지에 예정보다 약 19시간 늦게 도착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에어부산은 자사 규정에 따라 승객 1명당 10만 원을 보상해 줬는데요. 

당시 승객들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에어부산이 승객들에게 1인당 위자료 4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식사비와 교통비 명목의 10만 원을 더 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같은 해 기체 결함으로 회항해 5시간가량 지연 출발했던 이스타항공에는 승객 1인당 위자료 2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현행 법상 기체 결함 등으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본 승객들은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기 전까지는 항공사가 자사 규정에 따라 제시하는 보상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국내에 기체 결함으로 인한 도착 지연에 대한 별도의 보상 관련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앵커] 

고객 잘못도 아니고 기상 변화 등 천재지변이 아닌 항공기 기체 결함으로 위험한 상황을 겪어도 딱히 보상받지 못하는 거군요? 

[기자] 

일반적으로 항공기 정비는 다른 교통수단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공정위의 소비자 분쟁 해결 권고 기준에는 항공사가 이륙 전에 기준에 맞춰 사전 정비를 했다면 비행 중에 발생하는 기체 결함 등 정비 문제는 기상 문제처럼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항공사의 책임을 면해주고 있습니다. 

이외 국토교통부의 보상 가이드라인은 없고요.

결함에 대한 항공사의 책임이 크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현행법상 승객이 받을 수 있는 보상액은 공정위 권고 기준에 명시된 대로 운임의 10~30%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사전 정비를 철저히 했는지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인데요. 

기체 결함이 정말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항공사들이 안전 투자와 정비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도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이번 대한항공 엔진 결함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 대한 항공사들의 법적 책임과 보상 수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은희 /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 승객들이 크게 피해를 당한 거라고 볼 수 있거든요. (앞으로) 트라우마로 정신적인 고통이 있을 수 있고… 정신적인 피해가 우리나라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 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위해 그런 점까지 헤아려서 보상을 해야….] 

[앵커] 

이번 엔진 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 결과는 언제쯤 나옵니까? 

[기자] 

20일부터 조사가 시작되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는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엔진 제작사인 PW사와 사실 조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대한항공도 사건 직후 사고조사 등 인력 10명을 비상 착륙한 아제르바이잔 현지에 파견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SBS Medianet & SBSi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김정연다른기사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등기이사직 사퇴
더 이상 터질 새우등도 없다…산업계 최우선 과제는 ‘탈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