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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까'페] 보령, 고혈압약 지켰다고?…복잡한 제약바이오 특허세계

SBS Biz 이광호
입력2022.05.02 15:50
수정2022.05.03 10:31

제약바이오 업체에 투자하다 보면 신약과 복제약을 둘러싼 특허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특허의 종류도 너무 많고 이 특허를 둘러싼 분쟁도 굉장히 복잡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의약품의 특허는 물질특허를 비롯해 조성물특허, 용도특허, 결정형특허, 제제특허, 이성체특허, pk특허, 복합제특허 등 너무나 다양합니다. 또 복제약 출시가 단순히 20년 특허가 끝난 뒤에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허를 피하는(업계에선 '회피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다양한 방법이 있어, 특허 만료 이전에도 복제약이 출시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특허를 둘러싼 기초적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물질·조성물·용도…특허 종류부터 다양
최근 보령이 고혈압 치료제 듀카브의 특허를 지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400억원 이상 판매되는 약으로, 많은 제약사들이 이 제품의 특허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최근 특허심판원은 듀카브의 '복합조성 용도특허'의 '소극적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특허를 지켜낸 보령의 고혈압 치료제 듀카브(회사 제공)]
 
문장 하나에 어려운 말이 너무 많죠. 특허의 종류부터 차근차근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많은 특허가 있지만 물질특허와 조성물특허, 그리고 용도특허가 주로 거론됩니다. 물질특허는 어떤 신약의 효능을 내는 핵심 물질 자체에 대한 특허입니다. 듀카브의 경우 '피마사르탄'이라는 핵심 물질에 오는 2023년 2월 1일까지 물질특허를 받아 놨습니다.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 물질만으로 약을 만들 순 없습니다. 다양한 보조 성분을 섞어 의약품을 만들어냅니다. 이때 들어가는 성분을 '부형제'라고 합니다. 물이나 녹말도 부형제의 일종입니다. 부형제는 기본적으로 핵심 물질의 용량을 정확하게 투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약의 성능을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이 보조 성분을 섞는 방식에도 특허가 붙습니다. 이를 조성물특허라 합니다. 

용도특허라는 것도 있습니다. 해당 약을 사용할 수 있는 병에 대한 특허입니다. 만약 원본 의약품을 만든 회사가 발견하지 못한 효능을 발견한다면 새로운 특허가 됩니다. 극단적인 예시로 A 제약사가 폐암 치료로 특허를 받은 신약이 있는데, B 제약사가 이 약이 대장암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처음 입증했다면, B 제약사는 대장암 치료 특허를 받아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듀카브는 암로디핀이라는 고혈압약과 자사 핵심물질인 피마사르탄을 섞은 배합으로 용도특허를 받았습니다. 

특허마다 연장도 가능…제약사의 '에버그린 전략'
각각의 특허는 독립적으로 주어지며, 중간에 원본 제약사가 약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배합법을 찾아냈다면 특허를 또 받거나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특허 기간은 보통 20년인데, 한 약의 특허 기간이 종류별로 제각각인 이유입니다. 

제약사들이 이렇게 특허 기간을 늘리는 전략을 '에버그린 전략'이라고 합니다. 앞서 거론한 듀카브의 경우도 물질특허는 2023년 2월 1일까지지만 용도특허는 2031년 8월 8일, 조성물특허는 2036년까지 받아 둔 상태입니다. 만약 다른 제약사가 2023년 3월에 피마사르탄을 활용해 듀카브와 다른 용도로, 다른 조성물로 약을 개발한다면 복제약을 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특허를 회피한 약은 복제약이 아니라 신약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복제약과 신약을 가르는 기준은 현실적으론 핵심물질, 법적으론 임상 여부입니다. 듀카브의 경우, 같은 피마사르탄을 핵심 성분으로 삼았다면 복제약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약을 개발해 임상을 직접 거치는 게 아니라, 원본 의약품과 같은 효능을 낸다는 생동 실험만 거쳤다면 복제약이 됩니다. 

특허, 회피하거나 무효화하거나
특허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원본 제약사의 특허 공식을 약간 비틀어 약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고, 원본 특허 자체를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특허를 회피한 경우, 특허심판원에 소극적권리범위확인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약이 원본 의약품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아닌지 판단해 주세요'라는 요청인 셈입니다. 물론 여기서 어느 한쪽이 불복한다면 특허법원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특허 소송은 특허법원과 대법원 2심제로 이뤄집니다. 

조성물특허는 비교적 쉽게 특허 회피가 가능합니다. 부형제의 종류는 굉장히 많고, 원본 제약사가 쓰지 않은 부형제를 써서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질특허의 회피는 어렵습니다. 화학식을 조금만 바꿔도 원본의 효과가 동일하게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용도특허도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 특허를 지킨 듀카브의 경우가 용도특허입니다. 다른 제약사들이 핵심 성분인 피마사르탄은 그대로 두고, 암로디핀의 용량을 조절해 특허를 회피하려 했지만 특허심판원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핵심 제조 기술인 두 성분의 조합 자체를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방법인 무효 소송은 권리확인심판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예 특허청에서 해당 약물의 특허를 잘못 인정했다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듀카브의 특허 회피에 실패한 제약사 일부가 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제약업계엔 '신약의 매출은 특허 만료 전날까지 가장 많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제약이 출시되면 거의 반값에 동일한 효과를 내는 약이 나오고, 원본 의약품의 존재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정의 측면에서 봐도 고생해서 개발한 신약의 특허가 인정되는 편이 더 올바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값싼 약이 나와 경쟁체제가 되는 것이 훨씬 이롭습니다. 복제약 특허를 둘러싼 움직임을 계속 관심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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