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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과속에 ‘누더기’ 신세?] 3. ‘갈 길 먼’ 근로시간 단축, 해법은?

SBS Biz 최나리
입력2019.11.23 08:42
수정2019.11.23 09:02

■ 취재파일

▶[신현상 / 앵커]
과로사회 탈출을 위한 주 52시간제가 첫발을 뗐지만 중소기업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합니다.

특히, 최근의 경제상황 악화와 맞물리면서 확대 시행 논란이 뜨거운데요.

하지만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워라밸은 멀지만 가야할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 52시간제가 안착하기 위한 해법은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신현상 / 앵커]
일각에서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제도다 라는 푸념이 나오는데요.

왜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겁니까?

▷[최나리 / 기자]
재계는 주52시간 근무제를 따르자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합니다.

신제품 개발이 핵심인 전자·패션 등은 기획부터 최종 양산까지 최소 6개월 집중근무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고요.

정보기술(IT) 서비스나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로 사전에 업무량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계절별로 수요가 몰리는 건설업 등도 집중근로가 필요한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짧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계는 선진국 수준인 탄력근로시간제 최대 단위기간 1년,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정산 기간 6개월 이상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추광호 /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 : 업종마다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시기에는 일이 몰리고, 어떤 시기에는 일이 덜 몰리고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52시간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일이 많이 몰릴 때는 그 일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

▶[신현상 / 앵커]
그렇군요.

그래서 이 주52시간 근로제가 잘못된 법이다, 고치지 않으면 기업이, 나아가 우리 경제가 멍든다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나 봅니다? 

▷[최나리 / 기자]
최근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이고 기업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의 유연한 조율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할 때라는 경영계에 힘을 싣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 이승길 /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실질적으로 경기가 좋았을 때 해야 하거든요. (근로시간을) 줄이더라도 임금보전을 할 수 있고 근로자도 (임금을)가져갈 수 있는데 사실 경기가 나쁘면 기업이 줄게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총 근로시간이 좀 줄어든다고 하면, 그 제도를 쓸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내세우면 좋고…. ]

현재 경제상황 속 주 52시간 제도를 유지하려면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는 의미죠.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은 오히려 기업에 불확실성만 가중시켰습니다.

[ 추광호 /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 : 고용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 같은 경우에는 신청을 해야 하고 고용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되는데, 그게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인 거죠. 당장 (특별연장)근로는 필요한데, 신청하면 인가가 나는 동안 당연히 그 기간이 필요한 것이고 인가 신청했을 때 인가가 안 나면 기업들은 대책이 없지 않겠습니까? ]

▶[신현상 / 앵커]
앞서 당사자인 중소기업들은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법적으로 1년 이상 유예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봐야할까요?

▷[서주연 / 기자]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중소기업들은 막대한 비용 부담 때문에 시행 시기를 1년 이상 늦춰달라고 하는데요.

산업 현장에서 노사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로시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유연근무 제도인 탄력근무제와 선택근무제 개선안이 먼저 국회에서 법으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조성주 / 전 서울시 노동협력관 : 이미 노동부가 계도기간을 연장해서 실질적으로 당장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 이미 지금까지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연장 요구는)저로서는 좀 납득하기 어렵네요. ]

▶[신현상 / 앵커]
결국은 기업의 현실과 특성을 고려한 법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데요.

그래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통과가 시급해 보입니다?

▷[최나리 /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법안이 통과할지 불투명합니다.

일정상 이달 안에는 개정안이 상임위인 환노위를 통과해야만 연내 입법이 가능한데요.

아직도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올해 국회 문턱을 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국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고 정부의 보완책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는 만큼 극적 타결도 전망되고 있습니다.

▶[신현상 / 앵커]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외에 근로시간 단축을 정착시키기 위한 보완책,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서주연 / 기자]
해외사례를 살펴보면요.

독일의 경우 근로시간 계좌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노동자가 회사와 계약한 근로시간을 초과한 만큼 자신의 계좌에 저축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겁니다.

하루 8시간 일하도록 돼 있는 직원이 10시간을 일했다면 2시간을 계좌에 기록해 두었다가 휴가를 쓰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데요.

장기계좌의 경우 쌓아 둔 시간만큼 조기 퇴직도 가능합니다.

초과 근무를 했을 때 추가 수당을 받지 않는 대신 일을 쉬거나 줄이는 경우에도 똑같은 월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전체 기업의 44%, 근로자 500명 이상 대기업의 89%가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을 만큼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프랑스도 이런 근로시간 계좌제를 시행하고 있고요.

네덜란드는 비슷한 생애저축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가 현재는 주 단위로 돼 있는데 일본은 월과 년 단위여서 휠씬 유연하게 운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신현상 / 앵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탄력근로제 확대나 특별 연장 근로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현행 원청과 하청 구조의 노동 방식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주연 / 기자]
보통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게 긴급하게 발주하거나 납기일을 빡빡하게 하는  경우가 잦은데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6개월로는 갑작스러운 주문에 대처하기 버겁다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주물, 도금, 금형 등 뿌리산업이 대표적인데요.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뿌리산업 업체는 대기업, 협력업체 오더에 따라 갑자기 일이 집중될 때가 있어 단위 기간이  1년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지적들에 대해 원-하청 구조가 후진적인 산업, 뿌리산업 등은 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된 곳이기 때문에 탄력 근로제 단위기간을 늘리기보다 생산성 향상 등 산업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 김성희 /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특별연장근로를 확대 적용하기보다는 원청의 갑작스러운 납품요구와 같은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지 않는, 그래서 원·하청의 관계가 서로 경영여건을 존중하는 관계로 변하지 않는 한, 무리한 법제도 변경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신현상 / 앵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땜질 대책"

내년부터 도입되는 300인 미만 기업 주52시간 근무제 확대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내놓은 임시 유예 방안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중소기업계는 긍정적이지만 아쉽다고 합니다.

노동계는 정부가 무능함을 인정한 노동절망 정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측에게도, 노측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땜질, 땜빵, 누더기 같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사달의 원인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데 있습니다.

잘못 채워진 단추는 풀어서 다시 채우지 않으면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 인한 소모가 안 그래도 떨어지는 경제 활력을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오늘 준비한 순서, 여기까집니다.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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