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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마스터란, 복종의 대상이자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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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4.02.18 09:48
수정2014.02.18 09:48

■ 슬라보예 지젝 특강 - 4강. 닥치고 내 말 들어! 마스터

오늘날 위키리크스처럼 내부고발자들이 내부적인 공공을 위해 고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알렌카 주판치츠는 스노든 사태와 연관을 지어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스노든이 외국 정보기관에 자국의 기밀 정보를 몰래 팔았다고 해도, 관점에 따라 그를 애국자 또는 반역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노든 사태에는 다른 점이 있다, 우리가 스노든 사태를 논리에 따라 혹은 현상 자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스노든의 폭로 행위는 서구 정치의 몰락을 의미하며, 폭로 과정에서 스노든 개인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는 동시에 폭로 행위를 통한 이익 실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스파이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 이유 하나로 그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스노든은 내부고발 행위를 하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브래들리 매닝(위키리크스에 미국 군사 기밀을 제공한 인물)의 내부 고발 행위는 사회에서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다"

저는 이 부분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노든이 국가 기밀을 넘기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가 한 행위 자체가 대안입니다. 대안을 몸소 실천한 것이죠. 줄리안 어센지와 같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라는 돌파구를 멋있게 포장했습니다. 줄리안 어센지는 이런 내부 고발 행위를 국민을 위한 스파이 행위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스파이 활동 역시 우리의 비밀을 적국에도 넘기는 이중간첩 활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 스파이 활동이라고 포장하는 행위는 스파이 활동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비밀 유지라는 스파이 활동의 원칙을 깎아내리고 나아가 대중에 비밀을 공개하는 통로를 차단하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위키리크스가 하는 일은 공산주의자들이 할 법한 행위입니다. 위키리크스가 하는 일이 비밀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위키리크스는 자유로운 정보 공유가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자유로운 정보 공유가 가능한 공간은 '경제'와 '정치' 두 가지 영역에서 계층 간 분쟁을 야기합니다.

새로운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우리는 지적 재산권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되었죠. 인터넷 자체는 공산주의적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자료는 자유롭게 흘러가게 되죠. CD와 DVD도 점점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나 비디오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사업체들은 인터넷상에서 지적 재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일반인들도 공동 활동을 위한 네트워크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기관이나 민간 기업들이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 역시 다양해졌습니다. 제가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자본주의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작권의 법적 소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요즈음 지적 재산권은 개인 재산으로 여겨지고 있죠. 지적 재산권이 가진 모호성 때문에 정부가 대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개인은 자신을 조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미감정 때문에 스노든과 같은 내부고발자들을 감싸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에 나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위키리크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스노든이 대중에 기밀을 폭로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으로 통제 수단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정보 공유를 두고 벌이는 투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싸움이 결국 정치적 싸움으로도 번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여러 번 언급했던 개념이지만 근래에 이런 일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가 말한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칸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이성의 사적 사용’하면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성을 사용하는 행위를, ‘공적 사용’하면 국가적,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 가능한 이성을 떠올리게 되죠. 칸트는 이 개념을 정반대로 말하면서 국가와 기업의 활동에 관여하는 이성이 사실은 사적으로 사용되는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이성의 사적 사용에 대한 칸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의 행동은 결국 국가 기관과 정부에 의해 미리 정해진다는 것이죠. 칸트의 시대에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공간은 대학뿐이었습니다. 제약없이 이성을 사용하면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학생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했다며 불평을 많이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주로 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이런 불평을 했죠. 그들은 대학이 부유층과 일부 지식인에게만 허용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사는 힘 있는 사람들마저 같은 불평을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칸트가 말한 이성의 공적 사용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대학이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합니다. 대학에 대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을 내놓기를 바라죠.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마스터’라는 개념입니다. ‘마스터’하면 흔히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다소 모호한 단어일 수 있는데, ‘마스터’란 복종의 대상인 동시에 스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라캉이 저의 스승인 것처럼 말이죠. 라캉은 동시에 저의 마스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억압이 마치 자유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마스터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마스터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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