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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정용석 교수가 본 '살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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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3.12.09 15:56
수정2013.12.09 15:56

인문학, 최고의 공부 'Who Am I?' - 정용석 경희대 교수

CHAPTER 1. 살아 있다는 것의 정의


지젝, 베르베르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이 인문학의 향연을 빛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물학 교수의 인문학 나들이가 어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인문학 주제를 과학자의 시선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파우스트' 라는 책을 봤는데 보다가 그냥 덮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재미없고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파우스트'의 시작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하나님에게 은밀하게 제안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사한 '천상의 빛'을 이성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이성만 없어도 재미있게 살 텐데 하나님이 '천상의 빛'을 줌으로 해서 인간들은 이성을 가슴에 안고 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보니까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성이라는 부르는 것을 동물보다 혹은 짐승보다 더 짐승답게 사는데 사용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모두 작가 괴테의 펜에서 나온 창조물들입니다. 괴테는 사탄이기도 하고 하나님이기도 했으며 광대, 시인, 그리고 감독이자 극작가이기도 했습니다.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이라는 소녀에 한 눈에 빠지게 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레트헨을 미끼로 파우스트를 유혹합니다. 파우스트는 소녀를 갖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 계약을 맺게 됩니다. 영혼을 매매로 하나님과의 게임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살 수 있었을까?' 이것이 중학교 3학년 시절에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한번 '파우스트'를 열어보게 됐습니다. '파우스트는 영혼과 나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됐습니다.

대분분 '생물'이라고 하면 한 단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물은 살아 있다는 것과 물체라는 것의 복합어입니다. 즉 살아있는 물체를 생물이라고 부릅니다. 물체 중 살아있지 않은 것도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물체는 대부분 살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묶어서 생물로 개념화 시킵니다. 한번도 생과 물로 구별되지 않은 채 생물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유명하다는 사전에 기재된 '생명의 정의'를 보면 '여기 가면 저기, 저기 가면 여기' 이런 식의 순환 논리로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유명한 사전에서도 '생명의 정의'는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습니다. 생명을 자주 언급하면서 한번도 생명을 제대로 정의 내려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개념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생명의 최고봉은 나라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식사는 하셨어요?" 하는 이 아이의 표정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합니다. 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 많은 표현을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라며 상당히 깊은 뜻을 지닌지도 모르고 편하게 사용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님의 반대로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춘기 시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럴때 사춘기 아이들의 흔한 선택은 "나 밥 안 먹어!" 문을 꽝 닫아 버렸을 것입니다. 대부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입니다. 문제는 왜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필하는 방법으로 "나 안 먹어"로 택했을까 입니다.  

☞ 정용석 교수 '나는 이미 기적이다' 풀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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