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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의 살벌하고 슬픈 하루

SBS Biz
입력2013.02.25 11:39
수정2013.02.25 11:39

"자율적으로 키우는 건지 방치해놓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면서 이 정도의 노력도 안 하는 건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 처신 똑바로 하세요.

우리 같은 사람 우습게 만들지 말고." 과연 자식의 교육에는 어느 정도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해 상반기 드라마 '아내의 자격'이 자녀를 국제중학교에 보내려는 대치동 엄마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이번에는 강남 최고급 영어유치원의 자화상이 일요일 밤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지난 17일 첫선을 보인 KBS 2TV 드라마스페셜 4부작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다.

일요일 밤 11시45분 시작해 밤 1시에 끝나지만, 첫회 전국 시청률 5.5%를 기록한 데 이어 2회가 방송된 24일에는 6.9%까지 올랐다.

수도권시청률은 8%를 찍었다.

대한민국에서 군대와 교육은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서울 강남에서도 상위 1%만이 다닐 수 있다는 월 200만 원짜리 고급 유치원을 무대로 한다.

6-7세 코흘리개들이 영어로 뮤지컬을 하고, 유치원이 끝난 후에는 영어 학원에도 다니며 '열공'한다.

아이들의 뒤에는 자녀 뒷바라지에 올인한 쟁쟁한 엄마들이 포진해 있다.

이 정도의 유치원에 보내려면 '사모님' 소리는 듣는 집안 배경을 가져야 한다.

당연히 유치원에 오는 엄마들이 끌고 다니는 차와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도 상위 1% 수준.

그런데 비록 나는 아니어도 내 자식만큼은 상위 1%를 만들고 말리라는 중산층 엄마들도 더러 있다.

유치원부터 허리가 휘지만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건다.

드라마는 이 유치원의 학부모 중 개성과 배경이 뚜렷하게 갈리는 네 엄마의 하루를 각자의 시선에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물론 교육만 조명하면 재미없다.

'아내의 자격'이 사교육 광풍에 불륜을 가미했다면,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최고급 영어 유치원에 스릴러를 가미해 흥미를 배가한다.

드라마는 2회에서 영어 유치원 학부모회 대장 엄마인 이미복(변정수 분)의 아들 도훈이 갑자기 사라지고, 과거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자취를 감췄던 이 유치원의 전 원생 엄마 차현수(사현진)가 다시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또 늘 공주가 되고 싶어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7세 리나가 같은 반 친구 예린을 막무가내로 질투하고 음해까지 하는 이야기와 룸살롱 출신임을 숨기고 신분세탁을 했던 리나 엄마 차혜주(김세아)의 정체가 까발려지는 과정 등이 씨줄 날줄로 엮였다.

앞서 제작진은 이 드라마에 대해 "강남 가운데에서도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대치동, 개포동에 사는 4명의 30대 미시 엄마에 대한 인간 탐구"라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자들의 고민과 욕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인공 4인방의 연기가 캐릭터를 살리며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송선미는 딸 교육 때문에 15년간 다녔던 대기업을 그만뒀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정수아를, 신동미는 없는 살림에 사채와 카드빚까지 끌어쓰면서 아들 교육에 올인한 유경화를 유연하게 연기한다.

또 김세아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후처로 들어가 룸살롱 출신을 숨긴 채 딸을 공주로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차혜주를, 변정수는 돈이 넘쳐나는 도도한 안하무인의 이미복을 그야말로 불꽃 튀게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는 학부모회라는 이름으로 수시로 만나며 하하호호 하지만 속내는 '내 아이가 최고여야 한다'는 엄마들의 본심을 까발리며 이들이 미소를 지은 채 '뒤로 호박씨 까는' 모습들을 흥미롭게 그린다.

또 '돈이면 뭐든 된다'는 생각과 그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어떻게든 가랑이 찢어지게 뛰어보려는 눈물겨운 발버둥을 애처롭게 조명한다.

우리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는 유치원 사회에까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녀의 교육에서 비롯된 질투심과 원한이 복수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은 다분히 드라마적인 장치지만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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