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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 재벌의 안방과 금고를 까발렸다

SBS Biz
입력2012.05.17 08:35
수정2012.05.17 08:35

영화 '돈의 맛'(임상수 감독)이 제 6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17일 개봉하며 국내 관객들을 먼저 만난다.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보듯 그려낸 '돈의 맛'은 '재벌의 삶'이라는 소재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극중 재벌의 모습과 그 이야기는 사전 자료 수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재벌의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

임상수 감독은 실제로 영화의 '실화와 허구'를 묻는 질문에 "영화에 재벌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실제 재벌들을 취재했느냐'는 질문에는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내 취재원들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라며 "우린 재벌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재벌의 삶과 모습은 어떨까?

- 매일 그들이 입에 달고사는 것은?

임상수 감독의 전작 '하녀'에서처럼 '돈의 맛'속 주인공들은 항상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 대부분 최고급 와인이다. 전문가 못지 않은 와인 애호가인 이들은 밥을 먹을 때도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항상 와인을 곁들인다. 물처럼 와인을 마시는 그들의 넘치는 풍요를 보여주는 것.

백씨 집안의 딸 나미(김효진)가 집사 영작(김강우)에게 '좋은 거다'라며 와인을 마시기를 권하자, 영작이 한번에 들이킨 다음 별 감흥없이 '포도주네요'라고 대답하고 돌아가는 장면은 그렇기에 풍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 집만한 비밀금고와 현금다발

영화는 집 한채 만한 비밀금고에서 마트 창고 박스들처럼 켜켜히 쌓여있는 돈다발들을 보며 영작이 입 벌리고 놀라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몇 덩어리는 없어져도 모르는 이 '돈다발 집'은 영화 속 가장 판타지 같은 장면이기도 하다.

이 비밀금고는 영작의 캐릭터 변화를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돈의 맛에 중독된 슬픈 로맨티스트 백회장(백윤식)의 절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 연예인과의 염문

영화 속 재벌 2세는 판타지 일색이던 드라마 속 재벌 2세의 모습이 아니다. 순정만화 속 왕자님 대신 여색을 밝히는 타락한 재벌이 있을 뿐이다.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재벌 아들 윤철(온주완)은 여자 연예인과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가 연예인으로 보이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데려와 키우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매몰찬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돈이 많으면서도 돈 밖에 모르는 '타락한 재벌의 삶'에 대한 하나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백씨 집안의 안주인 백금옥(윤여정)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늙은 아버지에게 젊은 여자를 갖다바친다. 여러 여성들과 난교 파티를 벌이는 미국인 로비스트는 그러면서도 "한국, 참 재미있는 나라다"라며 냉소하고 백씨 집안 식구들을 조롱한다. 백회장은 대사를 통해 故 장자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자신의 지난 날을 반성한다.

- 하녀

'돈의 맛'은 임상수 감독의 전작 '하녀'의 확장판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실제로 '하녀' 속 주인공 전도연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했던 어린 나미가 자란 모습이 김효진이라는 설정이다.

'하녀'에서 하녀 전도연과 주인 이정재가 불륜을 저질렀던 것처럼, '돈의 맛'에서는 백회장과 필리핀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가 대놓고 관계를 갖는다. 다만, 이번 경우가 좀 더 진정성 있는 사랑의 모습이다.

여튼 한 채의 성 같은 백씨네 집에는 백씨 가족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두 부류로 나뉜다. 가족들의 수보다 더 많은 하녀들은 집을 관리하고 가족들을 보필하고 뒷처리를 한다. 때로는 끔찍한 일까지.

특히 영화 속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또 한명의 하녀는 할아버지(재벌 창업주)의 수행 비서로 할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 주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상황을 엿듣고 보고하는 여성이다. 그는 양심보다는 하녀로서의 투철한 직업관을 지녔으며, 소름끼치는 웃음과 비밀스러운 행동으로 가득하다. 영작이 이런 하녀를 분노하고 모욕하자 하녀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돌아온다. "당신이나 나나 월급쟁이야."



- 재벌 2세, 왕자님은 없다

영화 속 자신의 집안에 대한 죄책감을 지닌 나미(김효진)와는 상반되는 인물로 눈에 띄는 캐릭터는 아들 윤철(온주완)이다. 누나 한 명을 두고 있는 이 재벌 도련님은 귀여운 외모와 도도한 자태, (특별한 쪽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를 지녔지만 뼛속까지 이기적이고 부도덕하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뼛속까지 재벌 의식에 중독된 그는 일반 서민들의 삶에 대한 투쟁을 비웃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라고 확신하며 부, 권력, 섹스 등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욕구과 탐욕을 돈으로 이용한다.

대한민국을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본주의에 완벽하게 물들어 미국인 로비스트를 곁에 두고 검은 뒷거래를 일삼고, 그룹의 재산을 불법으로 증여 받을 계획을 세운다. 매체를 대상으로 한 언론플레이의 능력도 뛰어나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의 부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누나가 회사의 사장으로 오게됐다는 말에 권력을 뺏길까봐 전전 긍긍하고, 아버지가 돈의 맛의 중독된 자신을 정화시키려 마지막 몸부림을 치자 자신의 안위에 해가 입지는 않을까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수갑을 찰 때에도 '아버지 때문'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영화 속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가슴 아픈 신은 온주완과 김강우의 바닷가 격투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다 못한 도발에 백씨 집안의 충직한 비서였던 영작(김강우)이 윤철을 때려눕히려고 하나, 예상 외로 김강우가 온주완에게 한 대씩 맞을 때는 우울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돈으로 싸움의 기술을 배웠을 윤철에게 김강우는 여전한 '찌질이'일 뿐이다. 블랙코미디 '돈의 맛'에서 윤철은 일관적인 캐릭터로 영화의 너머, 백씨 집안의 앞날을 생각하게 하는 핵심 인물이다.

(OSE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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