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의 신비주의와 거짓말..수용 한계는
지난달 막을 내린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은 톱스타 백인기(서우 분)의 숨겨진 과거가 스토리의 큰 축을 차지했다.
그는 본명과 나이를 숨기는 것은 물론, 과거도 새롭게 창작했다가 운명의 장난 속에 친엄마에 이어 아빠를 찾게 되면서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 방송 중인 KBS 수목극 '가시나무새'에서는 당대 톱배우였던 윤명자(차화연)가 딸을 버렸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2009년 방송된 KBS 드라마 '미워도 다시한번'에서 톱스타 은혜정(전인화)은 재벌가 사위의 정부로,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신분을 숨긴 채 자신의 코디네이터로 세상에 내놓았다.
다분히 자극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드라마 속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어쩌면 현실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다.
지난 21일 세상에 드러난 서태지-이지아 간 '14년 비밀'의 실체는 역대 연예 뉴스 중 가장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14년이라는 긴 기간 전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결혼에 이어 이혼까지 했으며 심지어는 한국 땅에서 소속사도 모르게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중은 물론이고 두 사람의 소속사와 지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더구나 이지아와 최근 공개 연애를 시작한 배우 정우성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정우성 측은 22일 "정우성 씨는 이젠 누구의 말도 못 믿겠다고 한다.
그가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연예인이 성공을 위해 선택하는 신비주의 전략과 거짓말이 결합한 종합선물세트라는 점에서 그 '파괴력'이 크다.
사실 연예계에서 신비주의는 서태지만의 전략도 아니고, 신분 세탁은 이지아만 한 것이 아니다.
본명과 나이, 학력에 '성형'을 가하고, 결혼과 자식 여부를 숨긴 사례는 역사가 길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름, 나이 숨기는 것은 애교 = 귀신 잡는 해병이 된 '멋진 사나이' 현빈의 본명은 김태평이다.
영화 '아저씨'의 스타 원빈의 본명은 김도진이며, 서태지의 본명은 정현철이다.
즉 연예인이 데뷔하면서 '예명'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대부분은 예명을 쓰면서도 본명을 숨기지 않는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데뷔하면서 실제 나이보다 2-3살 정도 적은 '연예인 나이'를 내세우는데, 들켜도 웬만해서는 애교로 넘어간다.
최근에는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으로 금세 사실이 밝혀져 속여도 별반 효과가 없기도 하지만 나이를 한두 살 속였다고 크게 비난받지는 않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배우 황우슬혜가 3살, MC 현영이 4살, 가수 마야가 4살을 실제 나이보다 낮춰 활동했던 사실이 알려졌지만 잠시 인터넷에서 시끄러웠을 뿐 이들이 활동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학력 조작은 용서 못해 = 이에 반해 학력 조작에 대해서는 거센 비난이 이어진다.
2007년 '신정아 파문'을 계기로 속속 드러났던 허위 학력의 주인공들은 모두 호된 질책을 당했다.
장미희, 오미희, 강석, 최수종, 주영훈, 윤석화, 최화정, 심형래, 다니엘 헤니 등이 당시 허위 학력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중 비장한 심정으로 공개 사과를 한 사람도 있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 조작은 어떤 경우로든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허위 학력 파문'에 놀란 연예인들이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오른 자신의 프로필을 바로잡느라 한동안 분주했고, 두루뭉술 넘어가곤 했던 졸업과 중퇴의 구분도 명확하게 밝히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결혼.자식 여부는 '사랑'으로 이해 구해 = 2008년 7월 가수 타이거 JK(본명 서정권)와 윤미래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이 1년 전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까지 출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앞서 7년에 걸쳐 연애했고, 결혼과 출산을 하는 기간에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비밀스러운 행보는 속임수라기 보다는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두 사람이 뒤늦게나마 축하세례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연예계 대표적 노총각 가수로 알려졌던 박상민은 지난해 3월 늦장가를 들면서 "사실은 신부와의 사이에 이미 5살, 3살 된 두 딸이 있다"고 고백해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예식 등 순서를 밟지 않고 가정을 꾸린 데다, '짝퉁 박상민' 사건 등 여러가지 일이 터져 그간 밝히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는데, 그가 소위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그간 가정을 버렸던 것도 아니었던 만큼 후폭풍은 없었다.
또 서태지와아이들 출신으로 현재 빅뱅, 2NE1 등을 키우는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지난해 "여성그룹 스위티의 이은주와 9년째 연인 사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들 사이 역시 그전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현역 가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사랑을 지속해온 점에서 축복을 받았다.
그간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숨겨왔다고 고백한 양현석은 얼마 후 이은주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신비주의와 거짓말 사이 줄타기 = 이렇듯 연예인들은 사생활 보호와 성공을 위한 약간의 포장을 위해 어느 정도 트릭을 쓰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이 신비주의와 거짓말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있어 자칫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끊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예계에서는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후자의 경우라 파문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지아의 경우 본명이 '김지아'이며 그마저도 '김상은'에서 개명한 것이고, 1981년생으로 활동해온 그가 사실은 1978년생이라는 사실이 지난 21일에야 드러나면서 대중은 '속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가 이름도 나이도 모두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에 그의 과거도 베일에 싸여있었던 셈이다.
또 늘 대외적으로 싱글임을 표방했던 이들이 사실은 결혼에 이어 이혼을 했고, 대중뿐만 아니라 같은 연예인인 이지아의 연인 정우성마저 이를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은 '신비주의'라는 가져다 쓰기 좋은 면죄부도 전혀 소용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서태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서태지의 절친인 가수 김종서는 22일 트위터에 "서태지답게 본인의 입으로 말해달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한 기획사 대표는 "아무리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보호와 거짓말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며 "이번 사건은 양측의 소속사에게도 큰 충격이자 배신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획사 대표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최소한 지켜야하는 예의가 있다"며 "서태지, 이지아 모두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너무 큰 비밀을 오랜 기간 가져왔고 결국 선의의 피해자도 나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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